— 건너지 못한 신호등 앞에서
울고 있는 건
환자도, 나도 아닌
PCA뿐이다.
요즘 PCA는 큰 알람도 없다.
그저, 투명한 줄 사이로
보이지 않게 떨어지는 약방울이
조용히 울고 있을 뿐이다.
복도를 지나가다
PCA를 단 환자를 본다.
침상에 누운 채
눈을 감고 있다.
발걸음이 그 앞에서
괜히 멈춘다.
투명한 줄 끝에서
약방울이 떨어진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소리도 없이.
PCA는 또 울고 있다.
울고 있는 기계들 사이에서
나는 잠깐 숨을 놓친다.
미친 듯이 울려대는
콜벨과 전화벨.
내 핸드폰은
언제나 그랬듯 무음이다.
나는, 또 뛴다.
길고 지독한 밤이 지나면
아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병동을 환하게 비춘다.
환자들은 통증을 버티며
새벽을 지나고,
나는 식은 커피 대신
수액 냄새로 하루를 시작한다.
누군가는 조금씩 회복하고,
누군가는 조용히 떠난다.
우리는 그 둘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서 있다.
“괜찮아요,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그 말은
늘 내 쪽으로 먼저 돌아온다.
터덜터덜 걷는 퇴근길,
방금 떠오른 햇빛이
피곤한 눈앞에서
잠시 흔들린다.
무음이던 핸드폰에
조용히 볼륨을 올린다.
전화벨은 울리지 않는다.
이제 연락할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새벽을 버티는 일은
점점 나 혼자만의 몫이 되어간다.
거꾸로 흐르는 시계처럼
멈춰 있는 새벽 끝에 홀로 서 있다.
신호등은 아직 빨간색이다.
나는 그 자리에 아무 말 없이 멈춰 서서
애써 얼굴을 감춘다.
불이 바뀌자 신호등 건너편에서
사람들의 구두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온다.
나는 끝내 건너지 못했다.
출근길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리고,
울림이 모두 가라앉은 이 새벽 끝에서,
또 한 번의 밤이
조용히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