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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없어 슬프지 않았던

멋없던 아버지

by 글짓는 날때

“철도 기관사가 꿈이었어."

“네?”

“기관사가 쓴 정모가 그렇게 멋있더라고.”

“그러셨어요.”

“어.”


아버지에 대해 기억나는 건,

낚시터 가시던 아버지를 쫓아간다고 매달리다 혼난 기억과

늦은 밤,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울다가 혼난 기억과

‘철도 기관사가 꿈이었다’라고 수줍음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말씀하시던 임종 전의 아버지


멋있는 꿈을 꾸기엔 당신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고

아들과 함께 하기엔 당신의 휴식이 허락하지 않았으며

우는 자식을 달래기엔 당신의 고단함이 허락하지 않았다


꿈을 허락하지 않았던 당신의 부모는 죽었지만

당신의 꿈을 찾기엔 너무 늙어버린 육신이었고

추억을 만들기엔 고단함을 알아버린 자식들 뿐이었다


“철도 기관사가 꿈이었다”

멋없게 산 당신의 인생에도 꿈 정도는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꿈 정도는 있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당신의 후회였을까


당신의 꿈마저도 부끄러워 수줍음으로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

내가 기억할 수 있고 추억할 수 있는 아버지의 유일한 미소다

추억이 없어 크게 슬프지 않았던 아버지,

추억이 생겨 크게 슬퍼질 멋없던 아버지.


고단함을 아는 나이가 되니 내가 너무 멋없어 보인다




배고픈 유년이었고, 추운 젊음이었다. 고단한 인생이었고 고단한 체 나이가 들었다. 일을 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고 그날부터 기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믿었다. 기억이 사라지려 하자 나에게 기억할 만큼의 인생과 추억할 정도의 삶이 있었나 의문이 들었다. 아니, 분명 있었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단지 사라져 기억나지 않는다고 믿어야 한다. 나에게 그 정도는 해주고 싶다.


내가 태어난 해 날 낳으신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정신대에 끌려가는 대신 재처자리라도 들어앉아 살고 보자 라는 생각으로 시집온 여자가 내 두 번째 어머니였다. 그 어머니, 아니 그 여자는 죽는 순간까지도 내가 뭘 갖는 걸 아까워하던 여자였다. 그 여자는 시집온 해부터 육 년 동안 육 남매를 낳았다.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들 먹일 생각에 내입에 들어가는 밥 한 톨을 아까워했다. 내 아비는 핏덩이 하나 남겨두고 죽은 여자보다 년년이 자식을 낳는 그 여자가 좋았는지 그 여자와 같은 눈으로 나를 보기 시작했다.


배고픈 유년이었고, 추운 젊음이었다. 살기 위해 벗어나야 했고 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입대와 월남 파병이었다. 돌아왔을 땐 아비와 어미, 그 둘이 년년이 낳은 여섯 남매의 찢어진 입들은 더 커져있었고 벌어진 눈은 더욱 벌게져 있었다. 개인택시 자격증을 준다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고 다른 친구의 소개로 작은 섬유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돈을 모으려 했지만 커진 입들과 벌어진 눈들이 가만두지 않았다.


벗어나야 했다.

부모 없이 친척집에서 식모살이를 하고 있던 여자를 소개받았고 둘은 같은 목표가 있었다.

벗어나기.

둘이 선택한 방법은 결혼이었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받아본 적이 없어 주는 법을 몰랐다. 다만 먹이고 입히고 키우고 가르쳤다. 다 그렇게 살길래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여전히 고단했다. 받아본 적이 없어 주는 법을 몰랐듯이 기대본적이 없어 의지할 줄도 몰랐다. 기대지 못하고 의지할 줄 모르니 쉼도 몰랐다. 고단함을 감추기만 했고 겨우 혼자일 때 유일하게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의지하지 않는 무거운 휴식으론 울며 따라나서는 아이도 배 아파 울던 아이도 달랠 수 없었다.


기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억이 사라저서 추억도 행복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제 고단함이 끝날 것 같다. 열심히 살았다. 그 속엔 분명 행복도 기쁨도 추억도 있을 것이다. 단지 잊었을 뿐이다.


“철도 기관사가 꿈이었다. 기관사가 쓴 정모가 그렇게 멋있더라고.”

정 없고 멋없던 아비로 기억되는 게 싫었을까, 기억에도 없는 꿈 이야기를 했다.

아니 잊은 기억일 것이다. 나에게도 분명 꿈은 있었다.

추억도 기억도 없는 멋없는 아비보다는 꿈정도는 있었던 아버지로 추억되길 바란다.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던 기관사 정모를 쓴 나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왠지 수줍고 기뻐 크게 미소 지었다.

이제와 바람이 있다면 멋없던 아버지보다는 꿈이 있어 미소 짓던 아버지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고단했지만 겨우 미소 지을 수 있어 다행이다.





epil.

철도 기관사가 꿈이셨던 아버지에 대한 회상과

기억하고 들어 알고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당신의 시점으로 글을 지었습니다.

추억이 없어 애달프기만 했던 나의 아버지.

멋없는 아들이 겨우 생각해 낸 방법으로 추억하고 기억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어머니가 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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