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진심으로 쓴 문장은, 늘 조금 달고 싸하다.
2025년 7월 30일부터 나만의 글을 브런치앱에 쓰기 시작했다.
어느덧 4개월 남짓. 수많은 작가들의 황금 같은 글과 마주하며,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새기는 시간을 보냈다. 그 글들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세상을 다시 읽고 인간사를 공부하는 깊고도 넓은 사유의 시간이었다.
4개월 동안 나는 어디쯤,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내가 어떤 고민과 노력으로 글을 써내려 가는지, 혹은 아무런 고통 없이 쉽게 써내려 가는지. 특별한 재능 없이 써 내려가는 내 글의 뒷모습을 보며, 이 길이 맞는가 수없이 자문한다.
앞서가는 이들은 “괜찮다”며 따뜻한 응원을 건네준다.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가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하지만 문득문득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얻고, 무엇을 위해 계속 나아가고 있는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는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다.
젊은 예술가가 비평가의 “깊이가 없다”는 말에 갇혀 비극적 결말에 이르는 이야기.
그 작품을 떠올리면 늘 생각하게 된다.
깊이란 무엇일까? 예술가와 비평가가 말하는 그 ‘깊이’의 의미는 정확히 무엇일까?
우리는 감정을 이야기할 때 종종 애매하다.
마음속의 변화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고, 두리뭉실한 말로 감정을 덮어버린다.
그 애매함은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특히 자기 일에 자부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단 하나의 단어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그런 애매함으로 타인을 비판한다.
비판이란 결국, 타인을 통해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려는 욕망이 아닐까.
아니면 질투에 오는 반대되는 양가감정일까?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비평가는 애도조차 없이 그녀의 과거를 험담한다.
자신은 그 죽음과 무관하다며, ‘깊이’를 강요하고 제2의 상처를 남긴다.
그 부분에서 깊은 분노를 느꼈다.
비평은 인간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말로 누군가를 무너뜨리고도 책임을 회피한다니.
그의 글에서 시작된 불행을, 그는 끝내 남 탓으로 돌린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이유는, 나 자신을 검열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늘 비판 속에서 살아간다.
언젠가 누군가 내 추천 책 리뷰에서 “그건 당신의 생각인가요?”라는 나에게 곧은 질문을 받은 후 죄 없이 순간의 찰나 움찔했던 나 자신처럼.
나는 스스로 떳떳할 수 있을 때까지, 내 글을 계속 마주하려 한다.
나는 과연 깊이를 강요할 만큼 깊은 사람일까.
나는 진심으로, 진정성 있게 글을 쓰고 있을까. 시샘과 질투와 저열히 낮은 눈빛이 아닌 그 무엇도 아닌 것으로 말이다
힘든 창작의 고통이 없다고 해서, 나의 글이 무의미하지 않다. 그러나 너무 쉽게 쓰고 있진 않을까.
매주 올려지는 내 글이 진심으로 쓰인 것인지, 나 자신에게 자주 묻게 된다. 수차례 퇴고 과정 없이 순삭에 올려지는 나의 글이 자신이 없어 일까. 뭔가 걸리기 시작했다. 자질 탓으로 돌리는 내가 이젠 힘에 부치나?? 알 길이 없다.
아직까지는 타인의 평가에 불안하지 않다.
그저 자유로운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누구의 검열도 없는 자유로운 글 위에 무지개 풍선을 달아두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시간이 쌓일수록, 아주 가느다란 두려움이 밀려온다.
이제야 “언어의 무게와 남겨질 글의 힘”을 조금씩 실감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AI 툴의 도움 없이 오롯이 써 내려가는 내 글이 부끄럽지 않게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나는 그 순간 어떤 감정을 느낄까.
툴을 돌려 모두가 비슷해지는 문장은 견딜 수 없다. 누군가는 그런 너의 모든 생각과 글이 쌓여 너를 툴이 이해하고 너의 글을 좀 더 유려하게 다듬어줄 거라 안심시킨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야 옳은 것일까?
내 글이 내가 말하는 “진정성 있는 글쓰기”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일까?
타인의 시선이 완전히 사라진 ‘자유로운 나’일까, 아니면 세상과의 대화 속에서 단련되는 ‘사회적 나’일까.
<깊이에의 강요>를 통해 ‘비평’과 ‘창작’의 윤리를 살짝 건드렸는데, 그건 지금 시대의 예술가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겠다. 특히 AI 시대에, ‘툴의 도움 없이 쓴 글’이라는 말은 단순한 자부심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가 여전히 가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려는 내 작은 몸부림이다.
“툴을 돌림으로서 모두가 같고 비슷해지는 문장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진정 내 안에 불안한 강렬함이다. 그것은 ‘개성’과 ‘고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인간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진짜 글쓰기의 무게겠지.
툴을 통해 너무 쉽게 만들어진다면, 그 안에서 무가치함을 느끼고 자존심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AI 툴은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로서의 기능이지 그 우위에 설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나 역시 효율과 완성도를 위해 툴에 기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아주 느리게 느리게 오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부족하지만 내 안의 그대로를 끌어안고 가고 싶다.
그 어떤 특별함도 바라지 않는다.
다만 고전적이고, 진정한 글의 아름다움 속에서 살고 싶다. 고전을 즐겨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안의 진정한 고전작가들과 현대 작가들의 재능을 보며 감탄하고 배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나의 글은 그저 그 소중한 경험을 향한 봉봉사탕처럼 달콤하면서도 싸한 맛이 나면 좋겠다.
봉봉사탕처럼 달콤하면서도 싸한 그 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