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실에서 묘한 술렁임이 느껴집니다. 점심시간 식판을 정리하러 가던 여자 아이 두 명이 2학기 회장 아이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씩 웃는 웃음 뒤에 무엇인가가 느껴집니다. 뭔가 있다! 이건 분명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불안한 선생님은 식탁에 마주 앉은 2학기 회장아이의 눈을 보고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실어 말을 전합니다. 친구들이 쓸데없는 행동을 하면 무조건 말려야 한다고. 아이는 선생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교실로 돌아갑니다.
점심을 다 먹고 마지막으로 교실에 들어서니, 이번에는 교실에서 묘한 불편함이 느껴집니다.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 사이로 어색함이 새어 나옵니다. 양치질을 마치고 돌아오는 회장 아이를 복도에 멈춰 세웁니다. "무슨 일이야?"라고 물어봅니다. 아이는 대답하기 곤란한 얼굴로 말끝을 흐립니다. 그냥 본인이 중단시켰다는 말만 남긴 채, 난처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종종걸음을 치며 황급히 교실로 돌아갑니다.
더 이상 캐묻지 않고 틈을 기다립니다. 이튿날 급식시간, 어제 회장에게 신호를 보낸 여자 아이에게 슬쩍 질문을 던져봅니다. 아이는 난처한 얼굴로 어제 있었던 묘한 기운의 정체를 알려줍니다.
사실 어제 선생님의 열성팬들이 교실에서 선생님 생일 한 달맞이 이벤트를 하려고 했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선생님 생일을 알게 된 몇몇 아이들이 놓치고 흘러간 선생님 생일이 아쉬워, 정확히 한 달이 지난 이 시점에 생일파티를 열려했나 봅니다. 스승의 날과 여름방학 이벤트가 재미있었던 아이들은 세 번째 행사도 무리 없이 할 수 있겠다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기대했던 친구들의 반응이 1학기와 달랐나 봅니다. 점심시간 독서활동을 중단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이벤트를 강요받는 것이 누군가는 못내 불편했나 봅니다.
누군가는 선생님을 위해 준비한 이벤트인데, 거기에 동참하지 않는 아이들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수업과 관련 없는 단기적인 이벤트에 자신들의 독서시간이 방해받는 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묘한 불편함이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놓치고 있었던 게 하나 있었네요. 어떤 감정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요.
아이들은 알고 있습니다. 나쁜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누군가를 싫어할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 누군가를 혐오하고 함께 고립시키길 바라는 것은 폭력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감정도 강요하면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을 좋아할 수 있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무조건 동참하길 강요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반 26명의 외모가 다른 것처럼, 생각과 행동도 다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1학기 내내 해온 잔소리에 아이들은 나쁜 말과 부정적인 행동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감정은 다른 친구에게 권유해도 된다고 생각한 아이들이 있었나 봅니다.
사람마다 표현 방법도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겠지요.
누군가는 끊임없이 말과 행동으로 감정을 표현합니다.
누군가는 말없이 은근슬쩍 조용히 도움을 건네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하지요.
누군가는 아무런 말과 행동 없이 단순히 지켜봐 주고 바라보는 것으로 마음을 전달합니다.
26개의 생각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곳은 26개의 행동도 각기 다르게 어우러진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알림장 한 꼭지를 채워봅니다.
2025년 9월 25일 알림장
열다섯. 다른 이의 표현방식 존중하기
1. 좋은 감정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기
2. 각자의 표현 방식을 서로 존중해 주기
우리 아이들이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 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 하더라도, 내가 바라는 말과 행동의 강요는 생각이 다른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았으면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에 앞서, 한 걸음씩 물러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아이들이 되길 바라봅니다. 우리 아이들이 한 발씩 물러나 생긴 공간에서 따스한 눈빛으로 상대를 존중할 수 있는 어른으로 예쁘게 성장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