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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음란물 권하지 않기

1학기부터 시작된 사건들이 2학기에도 쭉 이어지고 있습니다. 열세 살 아이들은 자신의 신체 변화에 호기심이 생기고 이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다만 아직 표현 방법이 서툴러 어른의 시선에서 깜짝 놀랄 만한 사건들을 수시로 만들어냅니다.


2008년, 저는 처음으로 6학년 담임을 맡았습니다. 20대 초보 여자 선생님은 6학년 남자아이들이 벌이는 숱한 사건들을 감당할 수 없어, 같은 학년 남자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호기심이 가득한 남자아이들은 화장실에서 성기 주변 서로의 음모 유무를 확인했습니다. 자를 가지고 성기 길이를 재어보며 본인이 제일 크다고 뿌듯해하기도 했지요. 발기와 몽정을 해 봤냐며 서로 물어대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주고받았습니다. 빨갛게 달아오른 어린 선생님은 당황함을 감추고 의연하게 대처하려 노력했습니다. 더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남자는 남자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는 말로 아이들을 옆 반 남자 선생님께 수시로 부탁했습니다.


2025년에도 여전히 이런 일들이 진행 중입니다. 이제는 잔뼈가 굵어진 20년 차 선생님이라 웬만한 일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태연하게 지도합니다. 다만, 발달속도가 다른 아이들이 한 교실에 있기에 언어 선택과 상황 설명에 좀 더 신중을 구하려 하고 있습니다.


지난 학기, 6학년 아이 몇몇이 공원 벤치에 모여 신음소리 영상을 크게 틀어놓고 낄낄거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해서 안 되는 일을 구분해서 설명해 주었지요. 그때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 신음 소리가 뭐예요?



응?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교실의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교실의 누군가는 얼굴에 물음표가 맺힙니다. 선생님을 도와주겠다는 마음에서였는지 아이 하나가 설명을 덧붙입니다.



-아플 때 끙끙 앓는 소리 내잖아. 그게 신음소리야.



아, 물론 그것도 맞는 설명이지만 여기서 선생님이 설명하는 건 그게 아니었습니다. 결국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을 하게 되면 그 표현으로 성관계를 맺어. 그때 너무 기분이 좋으면 신음소리를 내기도 하지. 그래서 아무 맥락 없이 공공장소에서 신음소리를 듣게 된다면 누군가는 굉장히 불쾌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고, 심하면 성추행을 당했다고 여겨질 수도 있어.



상황을 이해한 몇몇 아이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누군가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선생님만 빤히 쳐다봅니다.



이미 몽정을 하고 초경을 시작한 아이들이 있기에 교과서에서는 5학년 때부터 신체의 변화를 지도하기 시작합니다. 저 또한 1학기부터 수시로 이야기하고 있지요. 자신의 몸에 호기심이 생기고 이성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부끄럽거나 멀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다만 소위 야한 동영상이라고 불리는 음란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으면 합니다. 음란물을 볼 수도 있지요. 이미 저희 반 아이들 중 누군가는 봤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과정은 쏙 빠진 채, 단지 서로의 몸에만 탐닉하는 영상 속 성관계가 남녀 사이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수시로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지요. 혹시 보았거나, 앞으로 호기심에 보게 되더라도 그게 절대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요.


더불어, 이 영상이 너무 신기해 '나만 볼 수 없다'는 사명감에 불타 오르지 말아야 합니다. 받아들이는 속도와 과정이 사람마다 다르기에 절대 다른 친구에게 권하지 않아야 함을 매번 이야기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강요가 될 수 있고, 권한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성추행이라고 느낄 수 있음을 강조하지요.


왜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까요? 이제 선생님 키를 훌쩍 넘어선 만큼 당연히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그만큼 커졌겠지요. 궁금할 수도 있고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이 음란물에서 본 영상이 사랑의 전부라고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께서 사랑을 하고 낳은 결실이 너희들인 것처럼 성관계는 누군가를 위하고 좋아하는 마음에서 예의 있게 시작하는 관계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오늘의 알림장 한 꼭지는 음란물 중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025년 9월 30일 알림장

열여섯. 음란물 중독 4단계
1. 호기심으로 본다.
2. 더 자극적인 영상을 찾는다.
3. 일반적인 상황이라 생각하며 무감각해진다.
4.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겨 모방한다.


음란물도 계속 보게 되면 더 자극적인 영상을 찾게 됩니다. 전후 설명도 없이 단지 더 큰 자극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영상이기에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자꾸 빠져들 수밖에 없지요. 1,2단계는 스스로 조절이 가능하지만 3단계로 넘어가면서부터 병원과 약물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스스로 판단해 보고 조절해가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몽정을 하고 생리를 시작했다는 것은 몸이 아빠, 엄마가 될 준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오해가 쌓이지 않도록 내 주변 누구라도, 심지어 부모님과 선생님, 요즘 유행하고 있는 남자친구나 여자친구 사이라도 자신의 몸을 보이거나 몸에 함부로 손대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숱하게 반복합니다. 본인이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때 예의를 갖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1학기부터 너무 자주 이야기해서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실천으로 이어져야겠지요.


이미 음란물을 보고 있으면 어쩌겠습니까? 당연한 성장의 수순을 밟고 있는 거지요. 다만 이런 성적인 행위가 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장난 같은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성관계는 더럽거나 감춰야 할 건 아닙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바라보고 책임질 준비가 되었을 때 사랑으로 시작하는 거라는 걸 우리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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