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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넷. 급식실에서 탕후루 만들어 먹지 않기

by 콩나물시루 선생님

6학년 2학기, 여름방학을 보낸 아이들이 콩나물시루 속 콩나물처럼 쑥 자랐습니다. 저를 올려다보는 아이가 하나둘 줄어들고 저를 내려다보는 아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사람은 시각적 동물이지요. 쑥쑥 자라는 아이들 모습에 속아 중요한 사실을 하나 잊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직 열세 살 어린이라는 것을요. 최근 달라진 외모와 제법 논리적인 말주변에 속아 아이들이 다 컸다는 착각에 빠졌나 봅니다.


오늘 점심 급식으로 프랑크 소시지 하나와 포도 4~5알이 나왔습니다. 작년 1학년 담임일 때에는 점심시간은 또 다른 전쟁이었습니다. 밥 먹기 전 일일이 사전지도를 해야 했지요.


젓가락에 소시지나 포도를 끼워 먹지 마세요.

젓가락에 목구멍이 찔릴 수 있으니 젓가락에 음식을 끼워먹으면 안 됩니다.

포도는 밥을 다 먹고 한 알씩 손으로 집어 먹으세요.

포도를 그냥 삼키면 목구멍에 걸릴 수 있으니 꼭꼭 씹어서 삼키세요.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을 해도 돌발상황이 생기는 것이 1학년 아이들입니다. 1학년 담임선생님은 식사 시간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6학년 담임을 맡으며 좋은 점 중 하나는 밥을 좀 더 편히 먹는 것입니다. 물론 6학년도 돌발상황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지요. 올해도 작년처럼 항상 아이들을 살피며 밥을 먹지만, 밥을 먹다 말고 일어서야 할 일은 사실 거의 없었습니다.


숟가락을 떨어트리면 알아서 챙겨 옵니다.

떡이 덜 녹아 딱딱하면 스스로 녹여 먹습니다.

반찬이 이상하게 생겼다고 뭐냐고 질문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오늘은 기분이 나빠 밥을 안 먹고 그냥 집에 가겠다고 울지도 않습니다.


스스로 다 할 수 있다고 믿은 게 패착이었을까요? 보통 급식시간에 자리를 잘 지키던 아이 하나가 저에게 다가옵니다. 진지한 얼굴로 속삭이며 물어봅니다.


-선생님 포도 껍질도 먹어야 하는 걸까요?


이건 무슨 질문일까요? 6학년 담임을 한 뒤 이런 질문은 오래간만입니다. 수저를 내려두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상식적인 답변을 내어줍니다. 굳이 먹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껍질에 영양소가 많으니 원하면 먹어도 상관없다고 알려줍니다. 선생님 말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자리로 사뿐사뿐 돌아갑니다. 그냥 가기 아쉬웠던지, 아이는 평화로운 식탁에 폭탄 같은 말 한마디를 던져줍니다.


-희재가 젓가락에 포도알을 끼우고 탕후루처럼 만들어 먹는데, 포도 껍질이 질겨서 먹기 힘들어하더라고요.


탕후루? 아! 이제야 저와 반대편 가장 끝자리에 앉아있는 희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젓가락에 포도를 알알이 끼우고 즐겁게 쏙쏙 뽑아먹는 모습이 신나 보입니다. 어? 제 근처에 앉아 있는 아이의 젓가락에는 프랑크 소시지가 길게 꽂혀있네요. 돌아보니 모두 나만의 특별식을 만들어 먹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아, 제가 놓쳤습니다. 아이들이 다 컸다는 착각에 빠져 열세 살이 여덟 살처럼 행동할 거라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오늘 알림장 한 꼭지는 급식실 이야기로 채워봅니다.


2025년 9월 25일 알림장

열넷. 음식으로 장난치지 않기
1. 젓가락에 음식 꽂아서 먹지 않기
2. 음식 꼭꼭 씹어서 먹기


누군가는 의아하시겠지요? 아이들이 즐겁게 먹는 급식 시간에 왜 굳이 이런 것까지 단속하는지요?

현실의 학교 급식실은 TV 화면 속 급식실과 큰 괴리감이 있습니다. 학교 급식실에서 '여유'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히 한 학년에 열 반 이상이 있는 대규모 학교에서는 조금이라도 시간이 밀리는 순간 다른 학년 아이들이 우르르 밀고 들어옵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순간에도, 앉아있는 아이들 틈 사이로 다른 반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 와중에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은 쏟아져 들어오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밥 먹고 있는 아이를 칠 새라 조심조심 이동해야 합니다.


학교의 식당은 가정에서의 여유로움과 편안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밥을 먹는 순간에도 누군가가 의도치 않게 나를 치고 갈 수 있습니다. 그 순간 내가 입 깊숙이 젓가락을 밀어 넣었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벌어지겠지요.


교실로 돌아와 설명은 들은 아이들은 누가 내 목구멍에 젓가락을 찔러 넣은 것처럼 눈살을 찌푸리고 손사래 칩니다. 이렇게 설명을 해 주었으니 이젠 덜 하겠지요. 아마 누군가 한다 하더라도 서로 말려주겠지요.


아이들이 다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몰랐나 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아직 덩치만 큰 어린이들이니까요. 알려주면 됩니다. 그런데 알려줘야 할 게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새롭게 생겨나니 그냥 여덟 살이라 생각하고 제 목을 좀 더 혹사시켜야겠습니다.


밥은 좀 여유롭게 먹자, 열세 살 어린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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