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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가 반하고 내가 사랑한 오름, 금오름의 일몰

제주 오름 여행 2 | 금오름 탐방기

by 새벽강

제주도의 이름난 오름은 대체로 동부 지역에 많다.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거문오름, 아부오름, 백약이오름 등이 주로 동쪽에 분포해 있다. 그렇다고 서쪽에 유명한 오름이 없는 게 아니다. 서쪽에서는 샛별오름과 금오름이 유명하다.


샛별오름은 평화로를 따라 서귀포 방면으로 내려가다 보면 오른편에 있다. 오름 아래 넓은 초원에서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 평화롭다. 크고 완만한 곡선을 따라 가을에는 억새가 일렁이고, 정월대보름에는 들불축제로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곳이다.

제주의 인기 오름 위치. 왼쪽부터 금오름, 샛별오름이다(지도 출처: 구글맵 검색 결과 캡처)

금오름은 서부 지역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름이다. 금악이라고도 불린다. 대개 험준한 산에 '악(岳)'자가 들어가는데, 금오름은 다른 오름에 비해 규모나 높이가 상당해서 붙은 것 같다. 높이가 있다 보니 패러글라이딩 명소이자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기 좋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우리 가족은 제주 해변 중에서도 특히 협재 옆에 있는 금능해변을 좋아한다. 그래서 서부 지역인 한림 쪽에 숙소를 정할 때가 많다. 낮에는 바다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해 질 녘에 금오름을 찾기로 한다.


숙소에서 수면 보충과 당 충전을 하고 나서 금오름으로 향한다. 입구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도 잘 정비되어 편하다. 숲길이나 산길이 아니라 포장된 길을 따라 대략 20분 정도만 오르면 된다. 초입은 삼나무숲 향기를, 중반부터는 탁 트인 풍경을 즐기면 더 좋겠다.


"조금만 더 힘내!"

가족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다가, 평소 운동 부족인 나의 호흡이 좀 가빠질 쯤에 정상에 다다른다.

"아빠, 여기 좀 봐요"

"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금오름에 처음 온 사람들은 대부분 감탄한다. 예상보다 훨씬 큰 분화구가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가수 이효리의 노래 <서울> 뮤직비디오에 나오면서 더욱더 유명해졌지만, 물이 고여 있는 거대한 분화구를 보는 순간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금오름의 화구호인 금악담의 풍경(사진 출처: 이효리 <서울> 뮤직비디오에서 캡처)

사진을 찍고 분화구 쪽으로 내려가 본다. 예전에 화산 활동이 일어났던 그 자리가 이제는 식어 작은 못(화구호)이 되었다. 아직 저기는 땅 속 깊은 마그마와 연결되어 있을 것만 같다. 물이 제법 고여 있고, 새들도 서식하고 있다. 주위에는 사람들이 쌓아 올린 작은 돌탑도 있다.

금악담에 새가 헤엄치고, 돌탑 주위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다시 오름 능선으로 올라간다. 커다란 원 모양의 분화구 주위를 한 바퀴 산책하는 것도 좋다. 동서남북으로 풍경이 계속 바뀌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반 바퀴쯤 돌았을 무렵, 해가 곧 질 것 같아 오름의 서쪽 봉우리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해가 비양도 너머 바다로 내려오고, 서쪽 하늘은 물들어 간다. 오름 아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풍경을 감상한다. 억새밭을 스치고 올라오는 풀 내음 섞인 바람이 뺨을 간지럽힌다. 황홀한 자연의 시간이 시작된다.

금오름의 일몰.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보다 직접 눈으로 본 풍경이 훨씬 아름다웠다


서쪽 하늘이 황금색에서 붉은색과 보라색을 오간다. 그리고 차츰 깊고 푸른 밤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하늘에 하나둘 별이 보일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다. 금오름의 일몰은 자연이 얼마나 훌륭한 예술가인지 느끼게 해 주었다. 이제 제법 어두워졌지만, 석양의 여운을 따라 조심조심 걸어 내려간다.


백록담까지 가기 힘들다면 금오름에 오르자. 산정 화구호 금악담의 풍경과 제주 서쪽 바다의 아름다운 낙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주와 더 깊은 사랑에 빠져들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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