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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어가도, 달라도 괜찮아! 김태리의 리틀포레스트

나만의 작은 숲과 하늘 1 | 영화 <리틀 포레스트> 혜원(김태리)의 집

by 새벽강
잠시 쉬어가도, 달라도, 평범해도 괜찮아!

바로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대사다. 도시의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온 청춘의 시골살이 이야기. 주인공 혜원(김태리)은 시험, 연애, 취업 등 뜻대로 되지 않는 도시를 떠나 아무도 없는 시골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직접 키운 채소로 음식을 만들고 한 끼, 한 끼를 해결한다. 방울토마토를 따먹던 장면이나 기와를 수리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가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자연 속 시골살이 느낌을 잘 살린 계절별 영화 포스터도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이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을 지나며 자신을 다시 회복하고 채우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도 함께 치유와 힐링이 되었다.

김태리 주연의 <리틀포레스트> 계절별 포스터(가을)

영화는 일본 원작을 한국의 정서와 배경에 맞게 각색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혜원이 만들어 먹었던 음식들도 수제비, 김치전, 두부전, 무지개 시루떡, 아카시아꽃 튀김 등 우리나라 음식으로 바뀌었다. 특히 경상도 음식인 배추전을 보면서 ‘아, 어쩌면 혜원이 돌아온 고향이 경상도 어딘가 일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아보니, 실제로 영화를 촬영한 곳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바로 군위군 우보면 미성리.

영남 중부 지역의 평범한 시골 마을이다. 볕 좋은 날, 혜원이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그 들판과 시골집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중앙선 철로가 지나는 한적한 시골 풍경을 따라 운전하다 보니 영화 속에 나왔던 들판과 그 시골집이 눈앞에 펼쳐진다. 군청에서 영화 촬영지 팻말과 주차장을 잘 만들어 두었다. 그래도 번잡한 관광지 느낌보다는 영화 속의 여흥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한 동네라서 좋다.

혜원의 집은 위천 건너 외딴집이다


들판에서 ‘위천’이라는 시내를 건너면 주차장이 있고 오른편에 혜원의 집이 있다. 시냇물과 들판을 내려다볼 수 있는 옛날 시골집 한 채.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는 네 칸 시골 한옥이다. 집 주위로는 꽃들이 피어있고, 마당 앞뒤로 서 있는 감나무 세 그루에는 이제 막 새싹이 돋아난다. 본채와 아래채, 그리고 창고와 우물은 옛 모습 그대로다.


방명록이 놓여 있는 거실 내부

그런데 대문만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집안 마루로 올라가는 문도 활짝 열려 있다. 누구나 집안에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다.


‘여기가 혜원이가 집에 내려왔을 때 문을 열고 털썩 드러누웠던 마루인가 보네',

'여기가 음식을 만들던 부엌이구나.’

혜원이 사용하던 양념통들조차 주방 창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렇게 세심하게 남겨둔 소품들에서 제작진과 군청 관계자들의 배려가 느껴져서 고맙다.


거실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테이블에 방명록이 놓여 있다. 펼쳐 본다. 여행을 다녀간 이들의 흔적을 빼곡히 적혀 있다. 다행히 내가 거실에 앉아 있는 동안 방문객이 별로 없어서 방명록 글을 조용히 읽을 수 있었다.



주방창 앞에 양념통들이 가지런하다

꽃샘추위. 28살.

취업이 힘들다...

머리도 복잡. 잡생각이 너무 많아 정리하고 싶어 찾은 이곳.

조용하다.

잠깐이나마 아무 생각 없이 좋은 것 같다.



“중학생 때 리틀포레스트 재미있게 봤었는데, 스무 살이 되어서 촬영지에 와보다! 이걸 보는 모든 이들이 행복하고 평안한 하룰 보내길.

나도 언제가 리틀포레스트 같은 영화를 만들어야지~!”


딸냄과 싸우고 힐링해 보려 왔다 갑니다.

늘 이런 곳에서 딸이 힘들면 쉬는 공간이 되었음 했는데, 오늘은 제가 쉬어가네요. 마음의 힐링 공간들이 다들 한 곳은 있었음 좋겠어요.

비 오는 토욜.


사랑하는 남편과 다녀갑니다.

여기서 혜원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을 엮고 또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멋진 곳에서 촬영해 주셔서.

이곳이 영원히 남아 있기를 기도합니다.


난생처음 영화 촬영지에 와 보니 어린 시절 살던 고향집이 새삼 그리워진다. 동심이 생각나고 엄마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오는 것 같은 옛시간으로 돌아간 듯하다. 까까머리 동자승 같은 남동생이 수박을 쪼개 들고 우물가에서 물장난하던 모습이 보이고, 어린 ○○가 곱슬머리 묶은 꽃송이 머리를 조아리며 “언니야!”하고 뛰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동그란 눈을 지그시 뜨고 손 벌려 다가오던 내 동생의 어린 시절이 집안 가득 채우는 소소한 일상이 이 집에서 평화롭게 그려지는 것은 옛집을 그리움보다 내 어머니의 정이 더 그리워서일 게다. 시골집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 어머님의 영혼이 이런 곳에서 평화를 찾는 것을 보았더라면, 우리 남매는 담장에 매달린 조롱박의 올망졸망한 정겨운 모습을 닮아가면서 늙어갈 텐데... 새가 되어 날아가고 싶다던 내 어머님이 오늘은 너무도 보고 싶어라. 천장 서까래에 제비가 봄에 날아와 지을 것만 같은 작은 사랑스러움, 감격의 시간이다.


제주도를 갔다가 올라가는 길에 방문했다.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넘 조용하다. 들리는 소리는 짹짹거리는 새소리뿐. 여기서는 시간이 멈춰있는 느낌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평범하지 않은 특별함을 안고 일상에 충실하다 보면 또 설레는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그렇게 삶은 이어져간다. 욕심, 질투, 고독, 허무, 후회... 이 모든 것이 나를 찌르고 끌어당기지만 그 속에서도 꽃은 필 것이다. 봄이 오는 것처럼.


각자의 삶이 녹아 있는 짧은 글을 읽다 보니, 마치 영화 속편을 보는 느낌이다. 혜원이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 온 방문객들도 자신만의 리틀포레스트를 찾아온 듯하다. 영화를 안 본 사람에게도 힐링의 공간이 되고, 본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거실에 가만히 앉아 창밖 마당과 들판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이 집은 혜원에게는 자신만의 '작은 숲(리틀 포레스트)'이자 보금자리였을 것이다. 이런 시골집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여유는 결코 쉽지 않다. 다만 시골집이 아니어도 동네 작은 공원, 근처 카페, 아파트 놀이터 등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작은 숲'이 있기를...


일상에 숨이 가빠올 땐 언제든지 나만의 작은 숲과 하늘을 찾아 잠시 쉬어 갈 수 있기를...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자신만의 '리틀포레스트'가 있으면 좋겠다(혜원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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