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치기 제주 숲 여행 3
별다방에서 당을 충전한 우리는 느긋하게 제주 ‘비밀의 숲’으로 향했다. 도토리숲에서 비밀의 숲까지는 꽤 가깝다. 비밀의 숲은 안돌오름 근처의 개인 사유지이다. SNS를 통해 유명해진 곳이지만, 사려니숲이나 동화마을처럼 잘 다듬어진 곳은 아니다. 들어가는 길도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이지만, 오히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어서 이름과도 더 잘 어울린다.
이곳의 상징인 민트색 버스는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는 동시에 작은 가게 역할을 하고 있었다. 버스 뒤 숲길에는 키가 큰 삼나무가 줄지어 있다. 사려니숲과 다른 삼나무들이 이색적인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숲으로 난 그 흙길을 걸었다. 빗방울이 투둑 투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삼나무 숲에 비가 내리니 분위기가 더 신비롭다.
걷다 보니 밭이 나오고, 탁 트인 전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나온다. 그때 햇살은 비추는데, 비는 더 거세진다. 빗줄기가 햇살에 부서지면서 삼나무 숲 사이로 흩뿌려지는 그 묘한 분위기. 그 비현실적인 분위기에 무언가 등장했다.
"어, 저기 봐!"
노루 한 마리가 비를 맞으며 밭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다. 사려니숲에서 한 마리쯤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다고 상상했는데, 비밀의 숲에서는 그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사람들이 다가가도 조금 물러설 뿐 멀리 달아나지도 않는다. 우리는 신비로운 그 풍경을 한참 멍하게 바라보았다. 상상이 현실이 되니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이다.
비가 잦아질 때까지 나무 아래 머물다가, 그만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데로 빠져나오고 말았다. 민트색 버스가 있는 쪽으로 나와야 하는데, 우리 둘은 이미 비밀의 숲 바깥에 나와 있다. 신비로운 비밀의 숲에 걸맞은 퇴장이라고 해두자. 그런데 고개를 들고 보니, 구름이 걷히는 하늘에 이제는 신비로운 무지개 다리가 놓였다. 이날 비밀의 숲의 신비로움은 끝이 없다.
큰길에서 나와 월정리 방향으로 향했다. 이제 천천히 해안 따라 차를 몰아 공항 쪽으로 가야지. 그리고 미리 봐둔 맛집을 찾아 저녁을 먹고 렌터카를 반납하면 오늘 여행은 마무리된다. 해안도로가 나오고 바다가 보인다. 다시 만나 반가운 바다. 썰물이어서 해변이 저 멀리에 가 있지만, 해변길 드라이브는 늘 즐겁다.
"저기 벵디 있다! 그런데 오늘은 문 열었네?"
"그럼 오늘 가볼까?"
벵디는 '벌판'이라는 뜻의 제주도 사투리인데, 돌문어덮밥과 전복죽을 파는 식당이다. 몇 년 전부터 여러 차례 찾아왔지만, 방문할 때마다 문이 닫혀 있어 가보지 못했다. 여기서 이른 저녁 먹기로 두 사람 전격 의견 통일. 알아둔 제주 시내 맛집은 다음으로 미루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해변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 앉는다. 돌문어덮밥과 전복죽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오늘의 두 번째 무지개가 바다 위에 선명하게 걸렸다. 창가 자리 덕분에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벵디는 돌문어덮밥으로 유명하다. 간이 다소 세기 때문에 맛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이 있지만, 그 비주얼은 누구나 인정한다. 돌문어가 예전보다 조금 작아진 감이 있지만 한 번은 경험해 볼만하다. 전복죽도 괜찮은 편이다.
식사를 마치고 이제 제주공항으로 향한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기 전에 희소식 하나가 날아왔다. 잃어버렸던 내 폰을 누군가 현재 보관중이란다. 낯선 동네의 남학생이 길에서 주워서 가지고 있다고, 아내의 폰으로 연락해 왔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포기했던 폰을 다시 찾게 되다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오늘 당일치기 제주 숲 여행은 그야말로 힐링의 시간이었다. 516도로 숲터널, 사려니숲, 도토리숲과 송당 제주동화마을, 비밀의 숲까지. 동선이 짧아 무리하게 다니지 않고도, 아름다운 제주 풍경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제주도에 새로운 관광지가 계속 개발되고 있지만, 여전히 제주도는 자연 그대로가 최고다. 신비로운 제주 숲에는 빽빽한 삼나무와 노루가 산다. 그리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쉼표 하나 꾸욱 찍을 수 있는 힐링이 있다.
*다음주부터 연재 요일이 변경됩니다. 매주 금요일에 연재중이던 <꽃멍 숲멍>은 일요일로, 매주 일요일에 연재중인 <일상의 쉼표>는 금요일로 변경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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