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오름 여행 5 | 아부오름 탐방기
아부오름과 만달레이. 나에게 아부오름은 만달레이로 기억되어 있다. 미얀마의 오래된 도시와 제주도 오름, 이 조합은 어떻게 연결된 걸까?
아마추어와 속초
신호등과 강촌
How deep is your love와 인천 송도
Golden과 어승생악
Summer와 사려니 숲
이 브런치북의 1화인 사려니 숲 글을 읽으신 독자라면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바로 노래 제목과 여행지의 조합이다. 그 장소에 여행 갔을 때 많이 들었던 음악이다. 그렇게 노래와 특정 여행지는 내 기억 속에서 서로 연결된다.
여행은 끝나도 여행에 대한 추억은 오래 남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렇게 노래를 연결해 두면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때 여행 순간들이 떠올라서 좋다. 이런 조합은 제주도 아부오름에 갔을 때 우연히 시작되었다.
처음 만난 제주도 오름, 아부오름
제주도 여행을 하다가 어느 순간 오름에 관심이 생겼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오름은 화산섬 제주도만의 매력 포인트다.
오름 탐방에 관심을 가지면서 가장 먼저 관심이 간 오름은 다랑쉬오름이었다. 원추형의 오름 모습도, 큰 굼부리도 단연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이들이 많이 어릴 때라서 일단 오르기 쉬운 오름부터 다시 찾아보았다. 그래서 발견한 오름이 아부오름이다. 오름 능선까지 금방 오를 수 있으면서 분화구를 크게 한 바퀴 걸을 수 있는 코스도 완만하여 어린이들에게도 어렵지 않다.
아부오름은 송당마을과 당오름 남쪽에 있어서 '앞오름'이라 불려 왔으며, 이를 한자로 '전악(前岳)'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오름의 모습이 마치 가정에서 어른이 믿음직하게 앉아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아부오름(亞父岳)'이라 불리게 되었다.
아부오름을 기억할 노래
어느 가을 아침 우리 가족은 중산간 지역의 숙소에서 아부 오름으로 향했다.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절물자연휴양림 근처의 삼나무 숲길을 지나 아부오름 입구에 도착했다. 오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덜하던 시기라 등산로 입구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우리가 제대로 온 게 맞겠지?'
괜히 걱정되었지만 오름 안내판을 보니 제대로 온 것은 분명하다.
가축들이 쉽게 드나들지 못하도록 만든 나무 입구를 통과해서 오름으로 간다. 입구 왼편으로 보면 나 홀로 나무가 한 그루가 있다. 지금은 부부로 살고 있는 당시 최고 인기 배우 장동건과 고소영이 함께 출연해 화제가 되었던 영화 <연풍연가>에서 두 사람이 엔딩 장면을 찍은 곳이다. 워낙 눈에 띄는 나무라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가지만, 이제 그 영화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살짝 경사가 있는 등산로에 접어들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름은 금방 정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크게 힘들어하지 않고 도착했다. 정상에 도착해서 시계방향으로 굼부리를 한 바퀴 돌기로 한다. 첫 오름을 오른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말의 것인지 소의 것인지 모를 배설물 덩어리들이었다. 초록 능선을 걷는 내내 곳곳에서 말똥과 소똥 '지뢰'를 조심해야 했다. 혹시나 큰 지뢰를 밟을까 조심조심했지만, 그 원초적인 풍경마저도 야외 스튜디오처럼 느껴질 만큼 기분은 좋았다
아부오름 능선을 걷다가 갑자기 든 생각.
'오늘 이 첫 오름을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도 특별하게 기억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음악을 같이 듣기로 했다. 당시 내 휴대폰에 저장된 음악 중 그날 날씨와 풍경에 가장 어울릴만한 곡으로 고른 노래가 바로 '더 로드 투 만달레이(The Road to Mandalay)'였다. 가사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뻥 뚫리듯 터져 나오는 '밤밤밤 빠라 람밤밤!' 후렴구가 신나게 느껴졌다. 후렴구를 다 같이 흥얼거리며 즐겁게 걸었다.
평평한 그 길은 나무사이 오솔길 같은 구간도 있고, 사방이 뚫려 전망이 시원한 곳도 있다. 오름 안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지점에서 잠시 멈춘다. 신기하게도 올라온 높이보다 굼부리 안쪽의 깊이가 더 깊어 보인다. 그리고 둥근 굼부리 안쪽에도 삼나무가 둥글게 서 있는 모습도 신기하다. 제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이재수의 난>을 찍은 곳이라고 한다. 아마도 지금은 이 영화를 기억하는 이도 많지 않을지 모른다.
만달레이는 어떤 곳일까?
노래를 들으면서 신나게 걷다 보니 어느새 한 바퀴를 다 돌았다. 다시 천천히 내려왔다. 첫 오름 탐방은 그렇게 성공적이었다. 다음 제주 여행부터는 가급적 오름 한 곳씩 일정에 넣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후로 그 노래(더 로드 투 만달레이)를 들을 때마다 아이들과 '지뢰'를 피해 가며 즐겁게 걸었던 아부오름이 떠올랐다.
어느 날 제목만 알고 있던 그 노래에 대해 한번 찾아보았다. 영국 가수 로비 윌리엄스가 2000년에 발표한 곡이라고 한다. 만달레이는 역사 유적이 많은 미얀마 제2의 도시라고 나왔다.
그런데 영국 가수가 왜 하필 미얀마의 도시를 제목에 넣었을까? 알고 보니 영국 문학과 대중문화에서 이 도시는 단순히 외국의 특정 도시 의미뿐만 아니라,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 가고 싶은 먼 곳, 해방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 노래에서도 단순히 실제 도시 지명이라기보다, 동경과 그리움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이다. 실제 만달레이를 여행지처럼 묘사하는 게 아니라, 내면의 갈망·탈출 욕구를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반복되는 후렴 부분은 “힘들고 혼란스러운 지금의 삶을 떠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만달레이는 '현실을 벗어나 꿈꾸는 이상향'이며, 제목인 'Road to Mandalay'는 곧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으로 가는 길을 상징한다.
알고 보니 가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둡고 심오하다. 하지만 뭐 어떠랴. 우리 가족에게 아부오름은 '더 로드 투 만달레이'의 후렴구처럼 뻥 뚫리는 시원함으로 언제까지나 기억될 테니.
https://www.youtube.com/watch?v=BPylgQcL9tg&list=RDBPylgQcL9tg&start_radio=1
*작가님, 독자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