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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의 귀대 열차 2 (뜻밖의 인연)

전역한 군부대 방문기

by 새벽강


https://brunch.co.kr/@ethipia/48


옛날에 복무한 군부대를 다시 찾아가 보셨나요?


증평으로 가는 푸른 들에 무지개가

열차는 조치원역에 정차했다. 조치원에는 몇몇 대학의 분교가 있어서인지 젊은 사람들이 많이 탔다. 내 옆자리에도 20대 초반의 여대생이 탔다. 그 학생에게 조치원역 광장이 어딘지 묻고 방향을 바라봤지만 낯설다.


경부선에 갈라져 충북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들판에는 큰길이 나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아주 작은 시골 간이역이었던 오송역 부근은 고속철도가 지나가는 도시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나지막한 산은 예전 그대로이다. 청주역을 지날 무렵 하얀 뭉게구름이 피어올라 30년 만에 돌아오는 열차를 반겨주는 듯하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내릴 증평역에 가까워지자, 하늘에는 무지개까지 걸려 있다.


충북선을 타고 증평에 가면서 대학 3학년 봄이 떠올랐다. 그때 입대한 스물두 살 청년의 심정도 함께.

이 열차만큼이나 바쁘게 달려온 30여 년 세월이 쏜살같이 느껴진다. 그 청년이 현역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여 임용 시험을 치고,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 길렀다.

어느새 큰 애가 그때의 나보다 나이가 더 많다. 그 세월을 지나온 나 자신이 조금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이렇게 인생이 흘러올 걸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 더 여유를 가져도 되었을 텐데…. 그래도 지금 그 시절을 떠올리며 열차 안에서 저 무지개를 바라볼 여유가 생겼으니 좋지 아니한가!



기차 여행이 만들어 준 인연

증평역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 짐을 챙겨 내릴 채비를 한다. 열차 출입문 쪽에 내릴 사람들이 줄을 섰다. 그런데 내 바로 뒤에는 군복을 입은 현역 병사 한 명이 서 있다. 계급장을 보니 상병이다.


“휴가 복귀하는가 보죠?”

“네, 그렇습니다!”

부대 마크를 보니 내가 근무한 자대와 같은 영내의 부대이다.

“37사단 사병인가 보네요. 혹시 연탄리로 가요?”

“네, 맞습니다.”


그 상병과 같이 증평 역사를 걸어 나왔다.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고 물으니, 휴가에 맞춰 집이 있는 대구에서 토목기사 시험을 치고 오는 길이라고 한다. 나도 지금 대구에 산다고 하니 반가워한다. 일행이 없어 저녁을 혼자 먹을 예정이라고 하길래, 밥을 사줄까 물어보니 사양하지 않는다. 바로 군인답게 인사한다.

"네, 감사합니다!"


이○○ 상병.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와 닮은 점이 여러 가지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왔다고 한다. 나 역시 같은 OO대학교 2학년까지 다니고 입대했다. 대학교 동문 후배가, 대구 사람이 별로 없는 충청북도에, 그것도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다니! 30년 전 내가 군 생활하던 딱 그 나이, 딱 그 장소이다.


증평역에서 부대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음식점이 많은 거리가 있고, 거기에 귀대 버스가 나온다고 한다. 그 거리 초입에 있는 냉면집에 들어갔다. 맛있는 걸 많이 사주고 싶은데 예상외로 적게 시킨다. 이유를 물으니 체중 관리 중이라고 한다. 입대 직전에 15kg을 빼고, 입대 후에도 무려 20kg 감량하여 관리 중이란다. 비결은 매일 저녁을 먹지 않고 그 시간에 뛰었다고 한다. 의지가 대단하다. 그 의지면 본인이 원하는 공기업 취업도 충분히 가능하겠다고 덕담을 해주었다. 그리고 30년 전 그 무렵에 내가 가졌던 고민과 생각을 말해주니 본인도 지금 똑같은 고민 중이라고 털어놓는다. 먼저 살아온 사람으로서 지나고 보니 이러저러하게 다 해결되더라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 주었다.


같은 내무반엔 7명이 같이 지낸다고 하였다. 그 숫자면 나누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대전역에서 산 성심당 빵 한 세트를 주려고 하니 음식물은 코로나19 이후 부대 반입 금지라고 한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고 인사한다.


기념으로 사진을 함께 찍고 나서. 이상병은 예의 바르게 따라 나와 나를 배웅해 주었다. 이상병을 우연히 만난 것은 증평까지 와서 그냥 부대 정문만 보고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었다. 그 친구에게도 오늘이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또 전역할 때까지 건강하기를! 기차 여행이 만들어 준 인연에 감사한 저녁이다.


30년 만의 귀대와 전우들

이상병과 헤어지고 카카오택시에 올랐다. 기사님께는 부대 정문까지 갔다가 다시 증평역까지 가 달라고 부탁했다. 부대 앞이 로터리 형태로 달라진 것 말고는 정문 풍경은 그대로였다. 위병소 위치도 그대로이고, 부대 담장 건너 □□슈퍼(구멍가게)도 그대로였다. 가끔 밤에 몰래 부대 담을 넘어가 슈퍼에서 물건을 사 오던 고참도 있었는데, 그 슈퍼의 주인분도 그대로 계실까.


증평 읍내로 택시 방향을 돌렸다. 부대 뒤편의 두태산도 그대로이고 내가 복무할 때 있던 포플러 나무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부대와 읍내까지 거리였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가까웠다. 아마도 그때는 걸어 다녔기 때문에, 그리고 휴가 나왔다가 부대로 복귀하는 마음이 이 길을 더 멀게 느끼게 했으리라.


낱개로 샀던 성심당 빵 하나를 택시 기사님께 드렸다. 기사님은 귀한 빵이라고 감사하다고 인사한다. 고향이 청주인 그는 동탄과 포항에서 근무하다가 퇴직 후 다시 돌아와 택시 일을 시작했다고 하셨다. 자신도 여기서 방위병으로 복무했다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신다.

기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옛 전우들이 생각났다. 부대 방위병들은 대부분 청주에서 출퇴근했는데, 청주 사람인 오○○ 일병 이름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몇몇 동료 현역병 이름도 떠올랐다. 무려 삼십여 년 만에….


대전으로 다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그 이름들을 검색해 보았다. 제일 친했던 고참 한 명과 동기 한 명 이름은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제대하고도 한동안은 연락하고 지냈다. 서로의 결혼식도 멀리까지 직접 찾아가 축하해 주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소식이 끊겼다. 군 생활 동안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사이였는데, 지금은 연락처도 몰라서 아쉽다.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꼬리를 물고 계속 떠오르는 이름들을 검색하다 보니, 같은 사무실에 근무한 후임병 이름이 나온다. 이○○ 상병. 그는 영화감독이었다. 유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를 만든 감독이었다. 힘든 일도 겪었지만 최근에 ‘매미소리’라는 영화를 개봉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저렇게 열심히 살고 있었구나!


고참 장○○ 병장님은 페이스북에 가끔 글을 올리는 분이라 바로 근황이 떴다. 김민기 가수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는 유쾌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나는 평소에 SNS를 거의 하지 않지만 오랜만에 로그인해서 그의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그런데 댓글이 곧바로 달렸다. 안 그래도 얼마 전 경상도로 출장을 갔을 때 내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내 고향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안부를 묻고 서로의 건강을 기원했다.


어둑해진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이기 시작한다.

“잠시 뒤 이 열차 종착역인 대전, 대전역에 도착하겠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잊으시는 물건이 없도록 잘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오늘도 행복한 밤 되십시오.”


열차 기관사의 정감 어린 멘트를 들으며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에서 내렸다. 그렇게 한나절의 귀대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오래 만나지 못한 친구를 만나고 온 것 같기도 하고, 20대 시절의 나를 만나고 온 것 같기도 하다. 다시 지난 30년 세월의 필름을 되감은 나는 성심당 튀김소보로를 손에 들고 가족들이 기다릴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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