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푸아의 경계자들
며칠 후, 아르팍 산은 그들을 맞이했던 서늘하고 청정한 환대를 거두었다. 시원한 공기와 어디선가 들려오는 극락조의 울음소리가 그들을 반기지 않았다. 좁은 길목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굉음을 내는 차량 행렬이 와이어트의 시야에 잡혔다. 주차된 트럭들은 타이어와 차체 하부까지 점토 빛 진흙으로 두껍게 덧칠되어 있었고, 마치 땅의 생채기가 그대로 옮겨온 듯했다. 반팔에 작업모를 쓴 남자들이 그 주위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속에서 거칠게 웃고 있었다. 옅게 코팅된 도로가 끝나자, 닐스는 이전과 달리 낯선 길목으로 핸들을 돌렸다. 나지막한 언덕을 넘어서자, 그들의 시야 아래로 작은 촌락이 고요히 드러났다.
차 문을 닫는 순간, 와이어트의 손에 끈적한 진흙이 묻어났다. 그는 흙먼지의 잔해가 남은 손을 털어냈고, 그때 짧게 땋은 머리의 아이를 옆에 두고 아욕이 다가왔다.
“갑작스럽게 연락해서 죄송합니다.” 아욕은 닐스의 팔목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인사했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어제 왔을 텐데, 자네가 이해해 주게.” 닐스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봤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다.
아욕은 그들을 마을로 이끌었다. 외부와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듯 나무 울타리가 길게 둘러쳐져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청량하게 들렸다. 길게 이어진 개울가에서는 물을 긷고 있는 몇몇 이들과 자맥질을 하는 꼬마들의 웃음소리가 흘렀다. 아욕이 그들을 안내한 곳은 녹이 슬어 붉게 얼룩진 아연 철판 지붕을 얹은 작은 나무집이었다. 닐스와 와이어트가 낡은 탁자에 앉자, 한 여인이 음식을 내왔다. 바나나 잎 위에 잘게 다진 고기가 섞인 밥이 놓여 있었다. 와이어트는 혀끝에서 맴도는 생선 특유의 고소하고 깊은 풍미를 느꼈다.
“입맛에는 맞으신가요?” 그들의 식사를 지켜보던 아욕이 말했다.
닐스는 셔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과 입가를 닦으며 답했다. "훌륭하네."
“어제 말씀드렸다시피, 우리의 삶이 훼손되고 있습니다.” 닐스의 행동을 천천히 기다리며 지켜보던 아욕이 말을 다시 했다.
"오는 길에 이미 많은 차량들을 보았네."
“공사를 진행한 거는 사실 꽤 예전부터입니다. 그런데, 점차 영역을 넓히더니…”
“짐작하네.”
“이곳은 저희에게 소중한 곳입니다. 마시고, 먹고, 자고, 웃으며, 살아가는 모든 것을 아르팍 산에 빚지며 지내죠.
와이어트가 수첩을 꺼내, 그의 말을 적었다.
“저희가 마시는 물에서는 그들이 버린 찌꺼기의 냄새가 섞여 나옵니다. 비가 내릴 때마다, 산 아래로 묽어진 토양이 쏟아져 내려와 마을을 덮칩니다.”
“이해하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닐스는 두 손을 깍지 낀 채 아욕을 응시했다.
“기자로서, 이 곳을 담은 기사를 써주시길 바랍니다. 펜으로 이 부당한 행위를 세상에 알려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저와 가족들이 이곳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게 두렵습니다.” 아욕은 닐스의 두 팔을 붙잡고, 그의 근육질 팔목이 약하게 떨릴 정도로 절박하게 속삭였다.
닐스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낮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기사를 쓰는 것은 기자에게 어렵지 않은 일일세. 다만, 한 가지는 이해해줘야 할 것이 있어. 자네의 이야기만을 기사에 담을 수는 없어.”
"하지만..." 아욕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산 정상에서 와이어트가 보았던 그의 강인한 인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기사를 거부하겠다는 뜻이 아닐세. 다만, 상대측의 의견도 들어보겠단 말이지. 자네가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듯이, 나도 정해놓은 원칙이 있지 않겠는가?” 닐스의 어투는 낮았으나, 흔들림 없는 단단함이 배어 있었다.
마을 한 구석에서 닐스가 휴대전화를 붙잡고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동안, 와이어트는 홀로 촌락 주변을 걸었다. 어두운 피부와 다부진 체격의 남녀 한 쌍이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와이어트는 홀린 듯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풀이 듬성듬성 난 한 공터 앞에서 멈췄고, 그곳에는 십 여명쯤 되는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었다. 뛰노는 아이들의 키만 한 울타리가 옆에 나있는 도로까지 이어져 있었다. 와이어트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남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여기는 어떤 곳인가요?”
남성은 시선을 들어 와이어트를 꿰뚫어 볼 듯 쳐다보더니, 곧바로 옆의 여성에게 고개를 돌려 그들의 언어로 대화했다. 와이어트에게는 그저 낯선 음절의 연속일 뿐이었다.
“제 남편은 인도네시아어를 못 합니다.” 여성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통역했다.
“여기는 학교입니다.” 여성의 손끝이 가리킨 공터 너머에 소박한 건물이 서 있었다. 남성이 다시 여성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혹시 아욕이 부른 기자분들이신가요?" 여성은 남편의 질문을 전달하듯 물었다. 와이어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성은 와이어트의 손을 붙잡고 거친 숨을 내쉬며 열렬히 이야기했다.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짓과 표정은 모든 것을 설명했다. 와이어트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듣고 있던 여성이 와이어트에게 남편의 말을 대신했다.
"우리 아이들이에요.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깨끗한 물과 안전한 음식을 먹이고 싶다고 하네요."
끄덕이는 와이어트의 앞으로 아이들이 날린 공이 날아왔다. 아이들의 공은 몇 번이나 꿰맸는지 모를 정도로 여러 개의 가죽이 덧대어져 있었다. 원형이라기엔 납작해진 그 공을 쥔 와이어트는 낯선 이를 가만히 바라보는 아이한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의 눈빛에는 호기심과 함께 짙은 경계심이 뒤섞여 있었다. 이곳에서 질리도록 마주친 그 시선. 어쩌면 와이어트조차 지니고 있을지도 몰랐다.
“한 번 새로운 놀이를 해볼래?” 와이어트의 물음에 가장 활발해 보이는 한 아이가 제자리에서 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공을 들고 저쪽 끝까지 달려 먼저 도착하면 이기는 거야. 단, 앞에 있는 사람에게는 공을 줄 수 없고, 상대 팀은 공을 가진 사람을 막아야 해. 알았니?”
공을 받은 아이가 공터 끝으로 질주하자, 다른 아이들이 앞다투어 뒤쫓았다. 곧이어 아이들의 꺄르륵거리는 웃음소리와 몸이 부딪히는 소리가 공터에 가득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와이어트의 얼굴에는 옅은 만족감과 흐뭇함이 피어올랐다.
그때, 공터 옆에 놓인 도로로 닐스가 운전하는 차량이 멈췄다.
“와이어트, 서둘러 타게!”
차에 탄 그에게, 닐스가 말했다. “저번에 말했다시피, 우리는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에서 그들을 바라보야해.” 사이드미러에 점점 멀어지는 마을이 보였다. 산 아래에 살아가는 이들. 자연의 일부로 그들의 사회를 구성하며, 자연의 일부로 함께 존재하는 이들이었다.
차량이 멈추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한 남성이 걸어 나왔다. 깨끗한 푸른 작업복에 안전모를 쓴 그는, 부드러우면서도 능숙한 미소를 머금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취재팀이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예,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을 현장 관리책임자라고 소개한 남성은 공손함 속에 넉살 좋은 여유를 감추지 않았다. 눈가에 자글자글하게 팬 주름과 약간 처진 몸매가 그의 관록을 짐작하게 했다. 와이어트의 눈에 비친 그는, 방금 전 만났던 파푸아인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더 밝은 피부색과 둥글둥글한 인상, 그리고 와이어트에게도 익숙한 표준 인도네시아어 발음이 그러했다. 관리책임자는 벌목이 한창 진행 중인 현장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이 땅은 머지않아 마노콰리 시민들의 견고한 경제적 기반이 될 겁니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떤 방식으로 말입니까?" 와이어트가 물었다.
남성은 고개를 돌려 손가락으로 방금 쓰러진 나무를 가리켰다. 껍질이 벗겨지고 잎사귀를 잃은 나무들이 그들의 발치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나무는 이미 생명을 포기한 듯, 모든 수분을 토해내며 굳어가는 중이었다.
“이곳에 세워질 팜농장이 가지는 가치를 아십니까? 수만 헥타르의 농장이 생기면, 더 이상 노동을 하지 않는 주민들은 없을 겁니다. 벌어들이는 돈은요? 모두 그들의 삶에 돌아가는 거죠.”
와이어트는 그 주장을 꼼꼼히 수첩에 기록했다.
“그게 중요한 겁니다. 우리가 이 땅에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는 역할이라는 거죠.” 남성은 뒤로 손을 깍지 낀 채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다만,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닐스가 질문을 던졌다.
"하하!" 관리책임자는 의자 팔걸이에 기대어 온몸을 들썩이며 폭소를 터뜨렸다. "물론이죠. 익히 아는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이 파푸아인들은 무엇이든 불만을 표출하는 오랜 특성이 있습니다."
닐스 옆으로 상체를 기울이며 무의식적으로 눈썹을 추켜올렸다. "모든 것이라 함은..."
관리책임자는 손바닥을 위로 펼쳐 보이며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한번 숙고해 보십시오. 우리는 이들을 억압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함께 동화되어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죠.” 그는 잠시 시선을 멀리 두었다가 다시 닐스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인도네시아에 얼마나 많은 민족이 살아갈 것 같습니까? 파푸아는요?”
닐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하게 답했다. “셀 수가 없죠.”
관리책임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걸음을 앞뒤로 옮기며 두 손을 뒤로 모았다. “어렸을 때부터 저희는 천 개가 넘는 민족들과 같이 살아간다고 배웁니다. 자연스럽게, 그들과 함께 하나가 되는 법을 배우죠.” 그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들의 원시적인 삶의 방식을 모두 존중하며 발전할 수는 없습니다.”
닐스는 팔짱을 낀 채 잠시 숲의 파괴된 풍경을 응시하다가, 다시 관리책임자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물었다.
“그렇다면, 이곳에 농장을 건설하는 것도 하나가 되는 방법이라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관리책임자는 만족한 듯 자신의 무릎을 내려치며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의 눈빛이 이글거리는 듯 빛났다. “그들도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들이 받은 특별한 지위와 막대한 예산은 거저 주어진 게 아니란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