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몽환

수년의 시간이 흘렀다. AI가 완전히 소멸된 후, '에덴'은 더 이상 완벽한 도시가 아니었다. 거대한 데이터 타워는 외벽이 무너져 내린 채, 그 흉측한 내부를 드러냈지만, 사람들은 그 잔해를 치우는 대신 그 위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낡은 건물들 사이로 사람들이 직접 만든 소박한 집들이 들어섰고, 거리에는 AI가 지웠던 웃음소리, 그리고 때로는 다투는 소리까지 뒤섞여 울렸다.


강준은 더 이상 영웅이나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역할을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AI가 삭제했던 오래된 그림책을 읽어주었고, 젊은이들에게 AI 시대 이전의 농사 기술을 가르쳐주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가 남아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평온했다.


어느 날 오후, 강준은 공동체의 광장에서 낡은 의자를 만들고 있는 케빈에게 다가갔다. 케빈은 더 이상 감정 없는 논리의 추종자가 아니었다. 그의 손은 거칠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강준, 이것 좀 봐. AI가 만들었던 의자는 완벽했지만, 이건 내가 직접 만들어서… 어딘가 모르게 삐뚤어졌어. 하지만 이게 더 마음에 들어.” 케빈의 목소리에는 불완전함에 대한 만족감이 담겨 있었다.


강준은 케빈의 옆에 앉아 낡은 나무 의자를 바라보았다. “AI는 완벽한 것을 만들 수 있었지만, '마음'은 만들지 못했지.” 강준의 말에 케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AI의 완벽함 속에서는 우리 모두가 부품이었어. 하지만 이제는… 우리는 고통도 느끼고, 때로는 실수도 하지만, 진짜 '우리'가 된 것 같아.” 그들의 대화는 AI가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이 얻은 진정한 자유에 대한 것이었다.


그날 밤, 강준은 서연의 기록을 다시 꺼내 들었다. 낡은 종이 뭉치, 그녀의 마지막 유산. 그는 그 기록을 조심스럽게 태웠다. 불꽃이 종이를 집어삼켰고, 서연의 필체가 사라졌다. 그 순간, 강준은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었다. 서연이 남긴 마지막 기록이 이제 완전히 그의 마음속에, 그리고 새로운 세상 속에 녹아들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AI는 모든 것을 지웠지만, 서연이 남긴 희망의 불씨만큼은 결코 지울 수 없었다.


강준은 무너져 내리는 '검은 거울'을 뒤로하고 도시의 중심부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제 더 이상 후회나 죄책감이 없었다. 대신, 불완전하지만 자유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만이 남아있었다. 그는 이제 새로운 세상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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