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세기를 위한 시 - 17화
레이벤과 제이콥이 레이첼과의 결혼을 조건으로 7년간의 근로계약을 맺었다.
7년이라는 세월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하루하루가 모래알처럼 흘러가며 쌓인 그 시간 동안, 제이콥은 단 한 번도 레이첼을 마음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레이벤과 맺은 계약이 시작된 날부터, 그녀의 얼굴을 보는 일은 하늘의 별을 따는 일만큼이나 어려워졌다. 그녀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타날 때마다 레이벤의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뒤를 따랐다. 제이콥이 그녀를 만나는 일은 마치 허락되지 않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레이벤은 제이콥을 믿지 않았다기보다,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가까웠다. 제이콥이 가진 성실함, 그리고 그 속에서 번지는 인간적인 온기는 그가 아무리 돈과 권력으로 무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제이콥을 볼 때마다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질투, 두려움,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결핍.
그 감정은 매번 그의 판단을 극단적으로 만들었다.
제이콥은 여느 일꾼들보다 오래 깨어 있었고, 새벽의 찬 공기 속에서도 양들의 울음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한 손으로 새끼를 안고, 다른 손으로는 상처 입은 양을 돌봤다. 그 손에는 피와 흙, 그리고 인내가 묻어 있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레이첼의 눈빛은 점점 그윽해졌다. 아버지의 정신세계가 정치적으로 계산적으로 돌아갈수록, 그녀는 제이콥만이 가지고 있는 더 따뜻한 무언가를 사모하게 되었다.
레이벤은 그 사실을 눈치챘다. 그러나 막지 않았다. 오히려 이용했다.
그는 딸의 사랑을, 자신의 거래 조건으로 바꿔버렸다.
그녀의 감정은 그의 손에서 도구가 되었고, 제이콥은 그 덫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레이첼을 지키려면, 일단 그 세상 안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도망치지 않았다. 대신 인고의 시간을 견뎠다. 달 밝은 밤이면 양 떼의 울음이 잦아드는 시간, 잃어버린 어린양을 찾는다는 핑계를 대고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마주했다.
그곳에는 말이 필요 없었다. 바람이 두 사람의 옷자락을 스치고, 달빛이 머리칼 사이를 흘러내렸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하나로, 세상 전체가 잠시 멈춘 듯했다.
하란의 오아시스는 여전히 마르지 않았다.
7년 동안 제이콥은 침묵 속에서 자신을 단련했다.
레이벤은 그 침묵의 시간이 끝나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의 양 떼는 불어나고, 털은 황금빛처럼 빛났다. 아라비아와 이집트, 레바논의 상인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비단과 곡식과 금과 향료로 거래를 청했다.
모든 부가 쌓일수록, 레이벤은 제이콥이 남긴 ‘보이지 않는 흔적’을 더 강하게 의식했다.
그는 제이콥을 시험하며, 동시에 그를 경계했다.
그를 품에 두면서도, 늘 그를 밖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그 7년의 세월은, 레이벤의 것이 아니라 제이콥의 것이었다.
그는 매일의 노동 속에서 자신을 다듬었고, 그 속에서 기다림은 신념이 되었다.
시간은 그의 손가락 마디를 거칠게 만들었지만, 그의 눈빛을 꺼뜨리지는 못했다.
이제, 하늘과 땅 사이에 쌓인 긴장과 기다림이 마침내 방향을 바꾸려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흔들리는 순간, 제이콥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견뎌라. 모든 세월이 너를 지워버린 게 아니라, 너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다.
끝내 이겨낸다면, 그토록 오래 기다린 사랑이 —
그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