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콥의 여정 : 레이첼의 슬픔
레이첼은 창밖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한 달 남짓 남은 결혼식을 생각했다. 7년이라는 세월은 제이콥의 이마에 깊은 주름을 남겼고, 손과 팔은 거칠게 변했으며, 얼굴빛도 검게 그을려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런 모든 흔적이 오히려 아름답게 보였다. 매일 자신을 위해 묵묵히 일하며 고생한 남자의 모습, 그 속에서 성실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제이콥의 얼굴은 어느 화려한 장식이나 말보다도 깊은 매력을 발산했다. 마음속 깊이, 곧 제이콥을 자신의 남편으로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렘과 기대가 한꺼번에 차올랐다.
그런데 결혼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언니 레아의 장막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들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결혼 준비라면 당연히 자신이 바빠야 할 터였는데, 왜 레아가 이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걸까. 마음 한켠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레이첼은 결국 아버지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레이벤 앞에 선 레이첼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 이제 제가 결혼할 날이 가까워졌는데,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저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레이벤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레이첼, 그렇지 않아도, 너를 부르려고 했단다. 사실은… 지금 나는 너와 제이콥을 바로 결혼시킬 생각은 없다.”
레이첼은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이해하려 애썼지만, 속에서 불안과 혼란이 일었다. 레이벤은 말을 이어갔다.
“너도 알다시피, 너는 나의 딸이고, 레아도 나의 딸이다. 만약 네가 먼저 결혼하면, 우리 하란의 관습법상 언니는 결혼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제이콥의 입지도 상당히 좋지 않아 지고, 나의 입장도 불리해지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없고, 사람들이 축복하는 결혼도 되지 못한다. 더군다나 레아는 평생 노처녀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너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겠지. 언니에 대한 미안함도 당연히 느낄 테고.”
레이첼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아버지의 말은 너무나도 합리적이었다. 그리고 현실과 관습, 가족과 제이콥의 미래까지 고려한 완벽한 설득이었다.
“지금 우리 하란 가문에 쌓인 부와 전략적 위치를 생각해 보거라. 레아에게 결혼 제안이 많다. 하지만 규정상 그녀를 결혼시키려면 시집가는 쪽에서 상당한 재산을 줘야 한다. 그리고 그 재산 대부분은, 제이콥이 고생해서 만든 것이지 않느냐. 그걸 다른 사람에게 내주는 꼴이 된다면… 너도 원치 않겠지. 그러니 차라리 레아를 먼저 결혼시키는 것이 집안에도, 제이콥에게도, 너에게도 최선이다. 레이첼 정말 미안하다. 조금만 더 기다리거라”
레이첼은 말을 잃었다. 마음속에서는 사랑과 욕망이 꿈틀거렸지만, 동시에 현실적 판단과 책임감이 그녀를 억눌렀다. 당장 눈앞의 결혼을 원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욕심이었다. 제이콥에게도, 가족에게도, 언니 레아에게도, 더 나아가 하란의 관습과 사회적 질서까지 고려하면 지금 결혼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깊은 곳에서는 날카로운 아픔이 그녀를 찔렀다. 7년간, 제이콥이 흘린 땀과 눈물, 손끝의 상처와 얼굴빛 속의 검은 그을음까지, 그녀는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긴 세월 동안 그가 고생하며 쌓아 올린 모든 노력과 희생이, 결국 자신이 아닌 언니 레아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이 그녀의 가슴을 조였다. 눈앞에 다가올 결혼식은 축복이어야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무거운 상실감과 속상함이 뒤섞였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이, 어쩌면 자기 손을 떠나 언니에게 맞춰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레이첼의 가슴을 단단히 옥죄었다.
한숨을 내쉬며 레이첼은 그 자리에서 잠시 멈춰 섰다. 마음 한켠에서는 여전히 제이콥과 결혼하고 싶은 열망이 타올랐지만, 현실과 책임, 사랑과 가족 사이에서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그녀는 깊은 혼란 속에 서 있었다. 이제 그녀가 해야 할 선택은 단순한 결혼이 아니라, 사랑과 희생,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해가 모두 얽힌 무게였다.
오늘 밤은 유달리 달이 밝았다. 아버지의 장막에서 은은하게 새어 나오던 등불빛 아래, 하얀 테라핌들이 떠오르는 듯 눈부셨다. 레이첼은 그 달빛을 따라 올라갔던 벼랑 위에 홀로 서 있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달빛은 얼음처럼 부서져 그녀의 그림자 위에 흩어졌다.
왜… 왜 내 사랑은 내 것이 될 수 없는 거지. 7년 동안 흘린 땀과 눈물, 그 모든 순간을 나는 다 봤고, 그 모든 것이 나를 향한 것이길 바랐는데… 그런데 이제, 내 손을 떠나 언니에게 돌아갈 수도 있다니.
제이콥, 나는 너를 사랑해. 하지만 이렇게 너를 사랑하면서도, 너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찢어진다. 언니를 먼저 결혼시키는 것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내 마음은 무너진다.
왜 이렇게 사랑이 아프고, 기다림이 쓰라린가. 내 사랑이, 내 기다림이, 결국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현실이… 참을 수 없이 가슴을 조인다.
하염없이, 달빛 아래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분노와 질투, 사랑과 절망이 뒤섞인 채, 나는 그저 흐르는 눈물 속에서 내 마음을 달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