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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완벽한 제이콥

시:창세기를 위한 시. 제19화

by 무이무이


제이콥이 너무나도 기다리던 레이첼과의 결혼식 날이었다.
밝은 햇살 아래, 레이첼의 면사포가 눈부시게 빛났다.
칠 년의 고통이 그 빛 속에서 서서히 녹아내리는 듯했다.

제이콥의 눈에는 오로지 레이첼만 보였다.
그런데 문득, 하객들 사이에서 또 다른 레이첼의 얼굴이 보였다.
아니, 레이첼은 지금 내 앞에 서 있는데—
저 여인은 누구란 말인가? 왜 그녀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

혹시 내가 긴장한 나머지 환영이라도 본 걸까?
눈을 비비고 다시 떠보았다.
그러자 그 여인은 사라져 있었다.
그래, 아마 내가 너무 들뜬 탓일 것이다. 정신을 차리자.

그러나 그날 밤, 신부의 면사포를 벗긴 순간—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등잔불 아래 드러난 얼굴은 레이첼이 아니었다.
그녀는 언니 레아였다.





레아의 눈빛이 등잔불에 흔들렸다.
불안과 초조가 그 눈빛에 섞여 있었고, 얼굴에는 미안함과 두려움이 번졌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이콥… 정말 미안해요. 아버지가 당신께 이 사실을 숨기라고 하셨어요.
당신이 레이첼을 사랑한다는 걸 나도 알아요.
하지만 이 지역의 관습법상, 레이첼이 먼저 시집갈 수 없어요.
아버지는 사람들 앞에서 권위를 잃고 싶지 않으신 거예요.”

제이콥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레아, 나의 천사여.
레이첼의 형, 레아여.
그대는 두려워 말고, 미안해하지도 마시오.

나의 사랑하는 레이첼을 위해
이 혼인을 파국으로 이끌지는 않을 것이오.
나는 레이첼을 사랑하오.
그래서 더더욱 레이첼의 가족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니 안심하시오.”

배신감과 당혹스러움을 억누른 채, 제이콥은 침착히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 밤, 레아의 곁에서 뜬눈으로 새벽을 맞았다.
레아는 그의 마음에서 순결한 사랑의 온기를 느꼈다.





제이콥은 어스름한 새벽, 양들 틈에 서 있었다.
양들은 제이콥의 냄새를 맡고 조용히 모여들었다.
그는 털이 곱고 깨끗한 양들의 등을 어루만지며, 하나하나 이름을 불렀다.

“얘들아, 나는 너희들과 함께 있는 게 좋구나.
너희들과 함께 있는 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아.
이게 그녀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레이벤의 장막을 향해 걸었다.
레이벤은 이미 제이콥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준비된 듯, 그러나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제이콥이 들어서자 레이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이콥, 놀랐을 게야.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로선 엄청난 결단이었네.
나의 사랑하는 두 딸을 모두 너에게 주겠다는 결단 말이야.
그러니 노여워하지 말게.
레아도 나의 사랑하는 딸이네.

내 아무리 너를 신임하고 기뻐한다 해도,
두 딸을 모두 한 사람에게 준다는 게 쉬운 일이었겠나?
그러니 제이콥, 레아를 먼저 시집보낼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을 이해해 주게.

곧 레이첼도 기회를 봐서 너와 결혼할 수 있게 하겠네.”

레이벤의 말투는 자상하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안에는 온기가 없었다.
계산과 이익의 냄새만이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제이콥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광야의 모래 속에서 저를 건져 올리신 분,
나의 천사 레이첼의 아버지, 하란의 영웅 레이벤이시여.

제가 어찌 당신께 서운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이곳의 법과 관습을 존중합니다.
당신의 뜻을 거역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다만, 제게 청이 하나 있습니다.
레이첼과의 결혼을 위해서,
그리고 이 양들을 위해서,
삼촌의 은혜에 보답할 시간을 주십시오.

7년—그 시간을 제게 허락해 주신다면
몸과 마음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레이벤의 눈빛이 흔들렸다.
제이콥은 자신과는 결이 다른 인간이었다.
그의 마음속엔 순수한 신념과 사랑이 있었다.
레이벤에게는 결코 닿지 못할 세계였다.




레이벤은 제이콥의 말을 들으며 잠시 침묵했다.
감동한 듯 보였지만, 그 눈빛에는 계산의 그림자가 어렸다.

“너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제이콥.
너를 이 하란으로 이끈 너의 신에게—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신에게 이 영광을 돌리겠다.
그 신의 가호가 너와 함께하기를 바란다.

좋다. 너의 청을 받아들이마.
일곱 해가 지나면 레이첼과의 결혼을 허락하고,
내 재산의 십 분의 일을 너에게 주겠다.”

그의 말은 겉으로는 제이콥을 향한 감사처럼 들렸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그는 이미 제이콥의 7년 계약 연장이
자신의 재산과 명예에 어떤 이득을 가져올지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제이콥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삼촌이시여,”
그는 낮고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아시다시피,
레이첼을 아내로 맞는 것 외엔 아무 욕심이 없습니다.
재산의 십 분의 일은 저의 몫이 아닙니다.
그건 오롯이 삼촌의 것입니다.

대신, 하나의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하란의 들판은 메마르고,
희고 연한 털을 가진 양들을 기르기엔 험한 땅이지요.
그런 양들은 제게도 버거운 일입니다.

그러니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검은 양,
얼룩진 양, 점 있는 양들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 양들은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레이벤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또 다른 계산이 시작되고 있었다.


모든 아라비아 상인들, 이집트 상인들,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상인들까지—그들 모두 흰 양털만을 원했다.
제이콥이 검은 양, 얼룩진 양, 흠 있는 양을 가져가겠다고 하자, 레이벤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들은 그에게 매출을 일으키지 않는, 쓸모없는 자산이었으니까.

레이벤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짐짓 아쉬운 듯 말했다.
“좋다. 나에게 검은 양, 흠 있는 양, 얼룩진 양도 자식 같은 귀한 생명들이지만…
네가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다.
너라면 돌볼 자격이 있지. 좋아, 네 청을 받아들이겠다.”




어느덧 3년이 흘렀다.
제이콥은 여전히 들판을 걷고 또 걸었다. 사막의 바람을 피하지 않았다.

레이첼은 그 긴 시간을 묵묵히 견뎠다. 멀리서 제이콥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았다.

그 사이, 제이콥과 레아 사이에는 자식이 생겼다.
그 아들들은 엄마 레아와 이모 레이첼을 고루 따랐다.
레이첼은 문득 생각했다.
‘내가 제이콥과 정상적으로 결혼했다면, 저 아이들이 내 아이들이었을까.’

그러던 어느 날, 레이벤이 직접 제이콥을 찾아왔다.

“제이콥, 너의 노고로 인해 나의 자산이 크게 늘고 있구나.
그런데 좋지 않은 소문이 들린다.
물론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 말이란 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한 간에는 네가 나의 것을 빼돌린다는 소문이 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믿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제이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레이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레이벤의 하수인들과 하란성 사람들 또한 외지에서 온 자에게 재산이 넘어가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길 터였다.

사실 제이콥의 양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그의 양들은 모두 검거나 점이 있거나 얼룩진 양들이었지만, 눈으로 보이는 숫자가 많아질수록 외형적인 자산의 규모는 커 보였다. 반면 레이벤의 희고 귀한 양들은 상대적으로 수가 줄어든 듯 보였다. 두 무리를 섞지 않고 구별해 놓았을 때, 그 차이는 더욱 도드라졌다.

하지만 하란성 사람들은 상품의 가치보다 숫자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제이콥의 재산을 두고 은근히 수군거렸고, 마침내 꼬투리를 잡기 시작했다.







제이콥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는 동료와 하인들에게 레이벤의 들판에서 얼룩지고 점 있는, 검은 양들을 골라오는 일을 중단시켰다.
그런 행동은 충분히 의심을 살 만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 제이콥은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회향나무 가지를 꺾어 드문드문 껍질을 벗기고, 그 무늬들을 엮어 작은 울타리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흰 수양들이 물가로 올 때마다 그 울타리를 세워두었다.

흰 수양들은 물을 마시며 물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그 물 위에는 나뭇가지의 얼룩무늬가 반사되어 있었다.
수양들은 그 무늬를 보고 자신이 얼룩무늬 양이라 착각했고, 그 착각 속에서 얼룩무늬 암양들을 쫓아다녔다.
제이콥은 바로 그 본능을 이용했다.

착각한 흰 수양들이 제이콥의 얼룩 양들 무리로 와서 짝짓기를 시도하자, 제이콥은 이제 반대로 자신의 얼룩 양들 중에서 흰 양들을 골라 레이벤에게 가져다주었다.
게다가 레이벤의 상품성 좋은 양들의 씨를 받은 제이콥의 양들은 색깔은 얼룩졌지만, 털은 더욱 부드럽고 건강해졌다.

그즈음 아라비아와 이집트, 레바논의 상인들은 더 이상 흰 양털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늬가 있어도 부드러운 제이콥의 양털을 선호했다.
때마침 시장의 유행도 바뀌어, 사람들은 무늬 있는 양털 옷과 양탄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제이콥의 재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반대로 흰 양들만 거느린 레이벤의 매출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레이벤은 사람들을 시켜 제이콥을 감시했다.
그러나 제이콥은 양들을 가져가는 일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결국 아무 증거도 찾지 못하자, 레이벤은 직접 그를 찾아왔다.

“제이콥, 나는 네가 내 양을 잘 돌보고 있다는 걸 안다.
네가 정당히 네 몫을 챙긴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지고 있어.
네가 속임수를 써서 내 재산을 빼돌리고 있다는 말이지.
실제로 내 자산은 줄고, 너는 부자가 되었지 않은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잘못된 게 분명해. 지난 칠 년간은 아무 문제없었는데, 재계약 이후 달라졌어.”

제이콥이 고개를 들었다.
“삼촌이시여, 하란의 영웅이시여.
어찌 저를 의심하십니까?
보시다시피 제 손과 발은 나뭇가지처럼 거칠고, 제 얼굴은 까마귀도 동족으로 알아볼 만큼 검게 그을렸습니다.
저는 삼촌과 레이첼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삼촌의 의심을 피하려고, 이미 제 몫을 챙기는 일조차 멈췄습니다.
삼촌의 매출이 줄어든 것은 저의 탓이 아니라, 시장의 흐름과 손님들의 마음을 읽지 못한 삼촌의 상인들 탓일 것입니다.”

레이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 낯선 젊은이는 나타나자마자 막혀 있던 우물의 돌을 치워 하란의 위기를 막았고,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주었으며, 심지어는 노처녀였던 큰딸까지 맡아주었다.
게다가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면서도 스스로의 재산을 늘려가고 있었다.

그런 제이콥에게서 느껴지는 무언가—
순수하면서도 꺾이지 않는 신념 같은 것—
그게 레이벤의 질투를 더욱 자극했다.

결국 레이벤은 시장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제이콥의 양털을 사서 가공해야 했다.
그 양털은 더 부드럽고 값도 쌌다.
결국 부는 제이콥에게로 흘러가고, 레이벤의 부는 사막의 바람처럼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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