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메아인의 왕

에이서스

by 무이무이

제이콥이 에이서스를 피해 하란으로 떠난 뒤, 에이서스는 더 이상 아버지 아이작의 집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곳에는 유년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동생의 빈자리와 배신감, 아버지의 축복을 놓쳤다는 허전함,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들이 서로 얽혀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남쪽으로 향했다. 셰일의 붉은 흙이 바람에 실려 떠도는 곳, 아버지가 말했던 ‘기름지지 않은 땅’—황무지를 향해.


떠남에는 이유도 목적도, 동행자도 없었다.
다만 거친 땅이 굳어진 발바닥을 사정없이 할퀼 때마다, 풀리지 않던 분노가 조금씩 마모되는 것을 느꼈다.
날카로운 절벽 사이로 메마른 열기가 치솟고, 모래는 발밑에서 유리알처럼 부서졌다.
그러나 그 황량함 속에서 그는 서서히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셰일의 붉은 절벽은 마치 고대의 신이 두르고 있던 옷자락이 그대로 굳어버린 듯 굽이굽이 이어져 있었다.
그 풍경은 사람을 반기지도, 품어주지도, 양식을 내어주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에이서스의 가슴 한쪽은 그 붉은 빛과 미묘하게 공명하고 있었다.


에이서스는 이 땅의 지형과 지리를 파악하기 위해 붉은 절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로프도, 하네스도, 카라비너도 없었다.
맨손과 맨발로 느껴지는 절벽의 까칠한 표면은 이상하리만치 그의 고독의 크기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손끝은 갈라지고 발바닥은 타오르듯 뜨거워졌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이 땅이 자신에게 속삭이는 숨결을 듣듯 오르고 또 올랐다.

중턱의 완만한 지점에 다다르자 그는 가죽 주머니를 열어 양젖으로 목을 축였다.
고소한 액체가 절벽에 반사된 빛을 머금고 붉게 빛나는 에이서스의 수염을 따라 한 줄기 흘러내렸다.
이 꿀맛 같은 순간을 위해 이곳까지 왔다는 생각이 스쳤다.
산 아래로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은, 마치 전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바로 그때였다.

하늘을 가르는 한 줄기 바람 소리.
본능적으로 몸을 틀기도 전에 어깨가 뜨겁게, 찌릿하게 스쳤다.
화살이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날카로운 화살이 그의 어깨 피부를 스치며 지나가 붉은 절벽에 박혔다.
돌가루와 모래가 사방으로 튀었다.

에이서스는 움찔했지만 두려움에 몸을 맡기지는 않았다.
대신 숨을 죽이고, 더욱 날카롭게 주변의 기척을 읽어냈다.
붉은 대지에 발을 들인 이후 처음 느끼는 위협.
환영이 아니라 경고였고, 동시에 사냥감 앞에 선 포식자의 흥분이었다.

바위틈 어딘가에서 낮지만 분명한 소리가 메아리쳤다.

숨을 죽인 사수들.
모래바람 속에서 눈빛만 번뜩이며 그를 겨누는 자들.


에이서스는 천천히 피 묻은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붉은 절벽 위에서, 처음으로 이 땅의 진짜 얼굴과 마주했다.

붉은 땅의 사수들 — 이두메아인

화살이 어깨를 스친 순간, 에이서스의 몸은 번개처럼 반응했다.
그는 절벽 중턱의 좁은 턱으로 몸을 낮추며, 방금 박힌 화살을 뽑아 쥐었다.
손바닥에 묻은 피가 식기도 전에 두 번째 화살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그는 그 화살마저 낚아채듯 잡아쥐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발이 바위에 닿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사수 다섯이 달려들었다.
그들은 붉은 바람처럼 빠르고 모래폭풍처럼 잔혹했지만—에이서스는 그보다 더 빨랐다.

첫 번째 사수는 그의 손에서 뻗은 화살에 목덜미를 스치며 쓰러졌고,
두 번째 사수는 돌려 쥔 화살촉이 관자놀이를 파고들자 그대로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몸을 기울여 세 번째 사수의 다리 사이로 파고드는 순간, 그가 휘두르던 창은 허공을 갈라 절벽 아래로 사라졌다.
그 틈을 타 에이서스는 이두메아인의 화살로 세 번째 사수의 심장을 단번에 꿰뚫었다.

남은 두 명은 이미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러나 에이서스의 숨결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네 번째 사수를 손날로 쓰러뜨리자, 마지막 사수는 등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에이서스는 두 번째로 움켜쥐었던 화살을 표창처럼 던져 그의 발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모래가 가라앉았을 때, 다섯 사수는 모두 땅 위에 쓰러져 있었다.
숨을 몰아쉬는 자도 있었고, 신음하는 자도 있었으며, 이미 눈을 감은 자도 있었다.

에이서스는 가장 근육질의, 대장으로 보이는 사수를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화살촉을 그의 목에 바싹 들이밀었다.

“족장이 어디 있느냐.
나는 이두메아인의 족장을 만나러 왔다.”

그 말은 낮은 천둥처럼 울렸다.

남아 있던 사수 하나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는 활에 특이한 촉이 달린 화살을 끼워 하늘로 쏘아 올렸다.

퓌유우우우—!

화살은 날아가는 동안 새의 비명 같은 휘파람 소리를 냈다.
그리고 멀리 언덕 위, 화살이 떨어진 자리에서 응답하듯 옅은 연기 기둥이 솟아올랐다.

그제야 이두메아인들은 활시위를 풀었다.
마치 시험을 통과한 자를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에이서스는 인질을 앞세운 채, 그들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걸었다.
언덕을 넘자 바위산 깊숙이 이어지는 거대한 토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의 횃불이 붉게 타오르는 가운데, 이두메아인의 족장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매는 사막 여우처럼 날카로웠고, 웃음은 깊은 주름 속에서 힘 있게 번졌다.
에이서스의 어깨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렀지만, 그의 기세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족장은 다가와 살아 돌아온 사수들을 훑어본 뒤, 마지막으로 에이서스의 발끝에 시선을 멈췄다.

“우리 중 누구도 저 절벽을 맨발로 오른 자는 없다.
이 땅은 용맹한 자를 알아본다.
에이서스, 우리와 함께하라.”

그 말은 단순한 권유가 아니었다.
전사로서의 인정이자, 왕으로 향하는 초대였다.


에이서스는 한동안 족장을 바라보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피 묻은 손을 내밀었다.

족장은 그 손을 힘껏 움켜쥐며 외쳤다.

“오늘부터 이 사내는 이두메아의 형제다!
그리고 앞으로—우리의 길을 열 자가 될 것이다!”

붉은 땅의 사냥꾼들은 에이서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의 명령은 바람처럼 날카로웠고, 그의 용기는 거대한 바위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신뢰했다.

그리고 어느 날, 늙은 족장은 전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이두메아의 붉은 땅은 이제, 짐의 피보다 더 젊은 피를 원한다.”

그렇게 에이서스는 족장의 자리를 계승했다.
붉은 산이 그를 받아들인 날—그는 이 땅의 왕이 되었다.






이두메아의 족장이 된 뒤에도 에이서스는 한동안 새벽마다 붉은 절벽 위에 섰다.

모래바람은 여전히 그의 뺨을 때렸고, 아래로는 기름기라곤 없는 황무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문득 깨달았다.
이 땅이 자신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자신을 가장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제이콥에게 빼앗겼다고 믿었던 장자의 명분.
그것은 종이에 적힌 약속도, 아버지의 손길도, 누군가의 축복도 아니었다.

“명분이라는 건… 타고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며 쌓아 올리는 것이었구나.”


제이콥이 가져간 것은 이름뿐이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에이서스가 이뤄낸 것은 현실의 자리였다.
목숨을 맡기고 따르는 전사들, 그들을 먹여 살릴 사냥터,
붉은 절벽에 울려 퍼지는 함성—
그 모든 것은 누구도 대신 가질 수 없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제야 아버지 아이작의 축복이 왜 저주처럼 들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너는 땅의 기름짐에서 떨어질 것이다.”
처음에는 모욕처럼 들렸던 말.
그러나 지금은 그 의미가 분명했다.

기름진 땅에서는 웅덩이마다 물이 고이지만,

황폐한 땅에서는 스스로 우물을 파야 한다.
그래서 그 우물은 더 깊고, 더 단단해진다.

아버지가 내린 축복은 부족함이라는 이름의 단련이었고,
척박함이라는 이름의 성장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그가 가장 오해했던 말.

“형제들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그것을 수치로만 받아들였다.
그러나 전사들과 함께 지내며 부상자를 돌보고,
사소한 분쟁을 직접 조정하고,
아침마다 새내기 사수들의 활시위를 살피며
아주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복종이 아니라 덮어주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시야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높이를 낮추는 것이고,
한 사람을 끌어올리기 위해 스스로 자리를 내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비굴함이 아니라, 리더의 품격이었다.


에이서스는 불쑥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도 없는 절벽 위에서 혼자 웃는 모습은 어쩌면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마음 깊은 곳에서 얼어붙어 있던 무언가가 조용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제이콥… 보고 싶구나.”

그 말은 바람 속으로 흩어졌지만,
언젠가 두 형제가 다시 마주하게 될 날—
그 말은 형태를 갖추어 다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
에이서스는 이미 용서를 준비해 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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