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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엘세바에 전해진 제이콥의 소식

레베카, 제이콥을 그리며 잠들다.

by 무이무이


브엘셰바의 저녁노을은 늘 그랬듯 조용히 세상을 붉게 물들였다. 태양은 모래언덕의 끝자락에 걸려 금빛을 쏟아내고, 낮 동안 데워진 모래는 못내 아쉬운 듯 아지랑이를 피어 올리며 마치 땅이 마지막 숨을 내쉬는 것처럼 아른거렸다.

이 적막하고 뜨거운 땅에서, 레베카는 요즘 유독 숨쉬기가 힘들었다. 제이콥이 떠난 뒤로 단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가 광야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건 아닌지,
하란까지 무사히 도착했는지,
낯선 땅의 사람들 속에서 상처받지는 않았는지—
걱정은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와
그녀의 가슴 가장 깊숙한 곳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기이한 변화가 하나 있었다.
아이작의 건강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력도 이전보다 나아져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물건 정도는
조심스레 더듬으며 식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눈빛은 예전처럼 깊고 부드러웠고,
레베카는 그 모습만으로도
한 줌의 위안을 얻곤 했다.

레베카가 눈을 들어 모래언덕을 바라보니, 아지랑이 사이로
낙타 떼의 실루엣이 모래 위에 흔들렸다.
오랜만에 이 길을 지나는 상인들의 행렬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반가워 달려 나왔다.
행색은 남루했고 피로가 깊게 배어 있었으니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도적을 만나
브엘셰바로 우회해 온 것이 분명했다.

아이작의 집 사람들은
그들을 정성껏 맞아 발 씻을 물과 숙소와 치즈를 내어주었다.
한동안 땅에 사람 냄새가 드물었던 터라
모두가 손님을 반겼지만…

레베카의 마음은 달랐다.
그녀는 상인들의 소식 속에
혹시라도 제이콥의 발자취가 섞여 있지 않을까
가슴이 저릿하게 떨렸지만,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는 끝내 묻지 못했다.
이유는 오직 하나—
누군가의 귓가에 불필요한 소문이 들려가
제이콥에게 해가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해가 완전히 기울고,
모래 위로 밤의 기운이 내려앉았을 때
드디어 레베카는 신뢰하는 하녀와 함께
조용히 상인들의 장막을 찾았다.

모닥불은 바람에 흔들리며 희미하게 물건들의 윤곽을 비추고 있었고,

그 속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아롱진 양털가죽이 있었다.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천천히 살펴보시오 부인."


레베카는 상인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당신들은 어디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상인은 햇빛에 그을린 얼굴을 들며 대답했다.

“하란에서 양털과 가죽을 가져왔소. 이집트로 가던 길에 도적을 만나, 이렇게 브엘셰바로 내려왔지요.”


그 말에 레베카의 심장이 순간 멈춘 듯했다.

“… 하란의 소식을 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상인은 여행의 먼지를 털어내듯 말을 꺼냈다.

“요즘 하란은 아주 풍요롭소. 성은 단단히 보수됐고,

하란 성주 레이벤은 그 일대에서 명성이 자자하오.

목축업이 크게 번성해서 무역도 잘되고… 하란에서 레이벤을 모르면 간첩이지요.”


그러다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아, 레이벤에게 조카가 하나 있었지. 이름이 제이콥이던가?

그 젊은이가 수완이 기가 막혀서, 레이벤의 양들을 돌보며 크게 목장을 일군 모양이오.

하란 상인들은 요즘 죄다 그 아이가 길러낸 양털만 찾는다오.”


레베카는 눈물 한 줄기가 흐르는 것도 잊고 그 말을 들었다.

멀리 떠난 아들의 이름이 바람결처럼 들려오자,

그 마음 깊은 곳에서 눌려 있던 그리움이 조용히 터져 나왔다.


눈시울을 누르며 레베카는 아롱진 양털가죽을 가리켰다.

“저것은… 참 독특하네요.”


“아, 저거 말이오.”

상인은 가죽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원래는 별 값도 못하던 무늬였는데…

그걸 귀한 상품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제이콥이지.

그 젊은이가 손을 대면 못난 양도 보석이 된다오.”


레베카는 손에 있던 은을 모두 꺼내 그 가죽을 샀다.

상인은 흥정을 가장하며 선심을 베풀듯 웃었다.

“원래 은 열 개는 받아야 하지만… 부인께서 저리 마음에 두신다니 아홉 개만 받겠소.”


그날 밤, 레베카는 장막 속에서 그 양가죽을 조용히 끌어안았다.

햇빛, 풀, 먼 길의 냄새가 뒤섞인 그 향기 속에서

레베카는 마치 제이콥의 손길을 느끼는 듯했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혹여라도 소문이 새어 나가 형 에이서스의 귀에 제이콥의 행방이 알려지면 위험해질까 두려웠다.


그 밤, 브엘셰바의 고요 속에서

레베카는 양가죽을 품고 조용히 울었다.

새벽 가까워질 때까지, 아들의 이름을 가슴속으로 불러가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밤,
레베카는 늘 그렇듯 제이콥의 향기가 배어 있는
아롱진 양털가죽 위에 몸을 기댄 채
고요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수십 년의 걱정과 그리움이
모래바람처럼 스르르 사라진 듯한 평온이 머물렀다.

마치 먼 여정을 떠난 아들을
마침내 따스히 다시 품에 안은 듯—
더는 아무 부족함도,
아쉬움도 없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의 향기를 품은 채
영원한 쉼 속으로.



《제이콥의 여정,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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