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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와 원칙 사이

"라떼는 말이야"와 "그건 제 일이 아닌데요"

by 유블리안

​'공개 응징' 사건 이후, 유 대리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매니저들은 더 이상 그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리더'로 신뢰하기 시작했다. 그는 '소문'이라는 독을 '공개된 사실'로 정리했고, 억울한 동료를 지켜냈으며, 문제 인물을 원칙대로 바로잡았다. 그는 '공정한 리더'임을 스스로 증명해 낸 것이다. ​바로 그때, 조직 개편이 단행됐다. 유 대리를 혹독하게 다그치면서도 기회를 주던 '팀장'이 영전하고, 신임 '오나래 팀장'이 발령받아 왔다. 첫 여성 팀장이다. 직원들은 첫 여성 팀장의 등장에 심장이 밖으로 나와있는 직원도 있었고 사무실에는 그전에 볼 수 없던 따뜻함이 맴돌았다..

하지만 ​그녀는 온화하지만 '큰 그림'만 보는 스타일이었다.

"저는 큰 전략에 집중할 테니, 팀 내 실무 조율은 대리님이 중간에서 잘 좀 챙겨주세요. 대리님의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소문이 자자해요. ^^"

유 대리는 사실상 팀의 실무 리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 순간 또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이 그를 압박했다.

"아~~ 일을 너무 잘해도 피곤하네." 그의 자신감은 천정을 뚫고 우주까지 날아갈 기세였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은 늘 위기를 자초한다고 했던가. 또 다른 시험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후, 신입사원 '이선우'가 팀에 충원됐다. 이선우 사원은 조용하고 유능해 보였지만, '개인주의'와 '업무 범위'에 대한 경계가 칼같이 명확했다. ​갈등은 유 대리의 팀 동료인 '김이수 주임'과 신입 '이선우 사원' 사이에서 터졌다.

• ​'에이스' 김이수 주임: 유 대리보다 직급은 낮지만 팀의 실무 에이스였다. 일 처리가 빠르고 정확하지만, '헌신'과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워커홀릭. "나 때는 말이야..."가 입버릇이었다. 흔히 말하는 '꼰대라떼'였다.

• ​'신입' 이선우 사원: 자기 몫의 일은 완벽하게 하지만, 6시가 되면 칼같이 퇴근하며 "그건 제 일이 아닌데요?"라고 선을 긋는다.

​중요한 분기 보고서 마감을 앞둔 날, 사건이 터졌다. 김이수 주임이 자료 취합을 하던 이선우 사원에게 5시 50분에 추가 수정을 요청했다.
​"이선우 씨, 여기 데이터 이상한데? 지금 바로 수정 좀 해줘요."
"주임님, 그 부분은 제 업무 범위가 아니고, 제 근무 시간은 6시까지입니다. 내일 아침에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뭐? 지금 다 같이 야근하는데 혼자 가겠다고? 마감이 내일인데!"
"마감은 '내일'이지 '오늘 6시 이후'가 아니지 않습니까?"
따뜻했던 사무실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다음 날, 두 사람이 각각 유 대리를 찾아왔다.

​김이수 주임이 먼저 불만을 토로했다. "대리님, 저 신입 좀 어떻게 좀 해봐요! 요즘 애들은 책임감이 없어요! '저희 때'는 상상도 못 할 일 아닙니까?"

곧이어 이선우 사원도 면담을 요청했다. "대리님. 김이수 주임님이 자꾸 퇴근 직전에 업무를 지시합니다. 이건 '업무 지시'가 아니라 '괴롭힘' 아닌가요?"

​팀장은 웃으며 말했다. "유 대리님이 중간에서 잘 좀 조율해 주세요. 대리님의 능력을 믿어요. " 그녀는 한발 물러설 뿐이었다.

유 대리는 깨달았다. 이전의 '응징'과는 다른, '중재'의 역할이 자신에게 주어졌음을.

한참을 고민하던 유대리는 둘 사이를 어떻게 조율할지를 예전 브랜드 매니저들을 관리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회의실 안. 여전히 차갑고 무거운 공기 김주임과 신입사원이 나란히 앉아있다.


"두 분이 왜 부딪히는지 잘 들었습니다."
그가 김이수 주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 주임님의 업무 속도와 정확성은 팀 최고입니다. (인정) 하지만, 주임님의 '헌신'을 신입에게 '당연하게' 요구하고 본인 입장을 주입시키려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그건 '업무'가 아니라 '가치관'의 영역입니다."
​그는 이선우 사원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선우 씨. '6시 퇴근'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하지만, 여기는 여러 팀원들이 모여서 같이 힘을 모아야 하는 곳이고 시너지를 내야 하는 곳이에요. 팀 마감을 인지하고도 '내일 하겠다'라고 선을 긋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책임'의 영역입니다. '제 일이 아니다'가 아니라, 공통업무는 신입사원이 가장 많은 참여가 필요해요. 그래야 많이 배울 수 있거든요. 그리고 '어디까지 완료되었고 내일 무엇을 하겠다'라고 5시에 미리 보고하는 것이 '프로'의 태도입니다."


​유 대리가 '규칙'을 세웠다.


"이건 두 분의 감정 문제가 아니라 '업무 프로세스' 문제입니다. 앞으로, 모든 업무 지시는 최소 퇴근 1시간 전(5시)에 마감합니다. 그리고 이선우 씨는 5시 30분에 오늘 완료한 일과 내일 할 일을 김이수 주임님과 저에게 '일일 보고'하는 것을 '새로운 업무'로 규정합니다. 불만 있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하시면 지금 얘기하세요. 뒤에서 욕하지 마시고요."
​두 사람은 여전히 껄끄럽지만, 유 대리가 제시한 '명확한 역할 분담(경계)'과 '강제적인 소통 시스템(규칙)'에는 반박하지 못했다.
​유 대리는 깨달았다. '응징'은 외부의 적을 향한 것이고, '중재'는 내부의 동료들이 각자의 역할에 맞게 시너지를 내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임을.



​"'응징'은 최후의 수단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경계'를 정하고, '공동의 목표'를 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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