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을 넘어 '업무'로 대하는 방법, 리더의 자격 '단호함'
지난번 팀 내부 갈등을 '시스템'으로 중재하며 '공정한 리더'로 신뢰를 얻은 유 대리. 그는 이제 자신의 '시스템 설계' 능력에 제법 자신감이 붙었다. 그런 그를 '오나래 팀장'이 불렀다.
"유 대리님. 아주 특별한 미션이 있어요. 유 대리님만 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미션이요? 저만이 할 수 있다고 하는 거 보니 쉬운 미션은 아니겠네요. 하하."
오 팀장은 '한지성'이라는 신규 입사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네 맞아요. 호호. 우리 회사에서 장애인 의무고용으로 '한지성' 님을 채용했습니다. 그분은 '지적 장애'가 있어요. 특징이 명확합니다. 첫째, 지능이 낮아 멀티태스킹이 절대 불가능하고, 둘째, 과대망상과 피해망상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팀 근무는 어렵고, 본관 지하 1층 '입고 상품 검수부서'에 따로 근무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유 대리님이 2주간 그곳으로 '파견'가서, 한지성 님의 '업무 시스템'을 만들고 '교육'하는 역할을 맡아주세요."
유 대리는 이전의 성공을 떠올리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네, 팀장님. 명확한 '시스템'과 '규칙', 제가 만들겠습니다."
유 대리는 즉시 그 부서로 파견 발령이 났다. 한지성 씨는 처음엔 공손했고, 유 대리가 시킨 '단순 업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해냈다.
"한지성 씨, 이 전표는 물건을 카운팅 해서 정확히 확인 후 스캔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쉽겠는데?' 유 대리가 안도한 순간, 문제가 터졌다.
유 대리가 스캔본을 확인하다가, 상품 딱 하나가 누락된 것을 발견했다.
"한지성 씨, 여기 7번 전표에 물건 하나가 빠졌네요. 이것만 다시..."
한지성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흑흑."
한지성은 갑자기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는 누구와 통화하며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우는척 하는건 알았지만 모른척 했다.
잠시 후 그가 들어온 것을 확인한 유 대리는 당황하는척 하며 이전의 '좋은 사람' 모드를 꺼내 들었다.
"지성 씨. 그런 뜻이 아니에요. 누구나 실수할 수 있죠. 괜찮아요."
이 '연민'이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한지성은 유 대리가 자신의 '피해망상'에 '동조'했다고 받아들였다.
"그럼 그렇죠."
그가 승리한 듯 속삭였다.
"(속닥이며) 대리님, 사실 제가 이 회사 사장 아들인데... 지금 다들 저를 시험하고 있는 거예요. 대리님은 제 편이죠?"
유 대리는 자신이 '피해망상'을 피하려다 '과대망상'의 늪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그는 완벽한 혼란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에 자꾸 전화를 하는지 충격적인 대화를 듣게 되었다. 노조 측에 전화를 해서 "유현상 대리가 본인을 힘들게 하고 쫓아내려고 일부러 불리하게 얘길 하면서 소리 지르고 물건 집어던지고 폭력적이다. 당장 내쫓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 그러시군요. 힘드셨겠어요. 검토하겠습니다."
노조 측에서도 유현상 대리의 성향을 알기 때문에 건성으로 대답했지만, 한지성은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이미 노조에서 유현상 대리에게 전화해 이런 일을 귀띔해 준 상태였다.
이 일로 인해 유 대리는 결심했다. '배려'가 아니라 '단호함'이 필요하다고.
얼마 후, 한지성이 유 대리에게 피해망상과 과대망상이 한꺼번에 터진 상태로 항의를 했다.
"대리님은 저한테 소리 지르고 짜증만 냈지 저를 동료로 생각 안 하는 거죠? 제가 어떤 사람인 줄 알면 대리님은 한 방에 날아갈 수 있어요. 곧 노조에서 당신을 해고한다고 연락 갈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 사장 아들이라고!"
한지성은 본인이 얘기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사장 아들이라는 것을 또 강조했다.
유대리는 더 이상 좋은 사람 이미지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한지성 씨!"
유 대리가 차갑고 단호하게 그의 말을 잘랐다.
"내가 겁 안 나? 사장 아들이고 나는 곧 기획전략팀으로 갈 거라고. 이따위 업무 할 사람이 아니라고!"
"한지성 씨는 '사장 아들'이 아닙니다. 우리 사장님은 한 씨가 아닐 뿐만 아니라, 백번 양보해서 그게 맞다고 해도 한지성 씨는 어제부로 입사한 '입고상품 검수부서'의 '신입사원'입니다." (팩트 1: 신분)
"그리고 저는 한지성 씨의 '편'이 아닙니다. 저는 지성 씨에게 업무를 '교육'하고 '평가'해야 하는 '상사'입니다." (팩트 2: 관계)
"지금 지성 씨가 하는 말은 '업무'가 아닙니다. 그건 '망상'입니다."
"지금... 나한테 망상이라고..."
한지성 씨의 눈이 다시 '피해망상' 모드로 바뀌려던 순간, 유 대리가 말을 끊었다.
"지금부터 3시까지, 한지성 씨의 업무는 이 모든 박스의 상품들을 실수 없이 스캔해서 확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성 씨가 '업무'로 증명해야 할 유일한 것입니다. 만약 이 '업무'를 거부한다면, 저는 '업무 지시 불이행'으로 오나래 팀장님께 보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 대리는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신분', '관계', '업무'라는 '사실'과 '규칙'만으로 그를 대한 것이다.
한지성은 '공감'이나 '동조'가 아닌, '명확한 경계'와 '규칙'을 마주하자, 처음으로 혼란스러워하다가... 이내 조용히 자리에 앉아 상품 스캔을 시작했다. 유 대리는 그제야 깨달았다. '단호함'이란 '응징'이나 '중재'와는 또 달랐다.
'지적 장애'를 가진 동료에게 필요한 것은 '불쌍하다'는 '연민'이나 '괜찮다'는 '동조'가 아니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를 '환자'로 대하는 '차별'이었다. 진정한 '존중'은, 그의 '망상'이 아닌 그의 '업무'에만 집중하고, 그가 '동료'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을 단호하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진정한 '단호함'은, '연민'이라는 감정 대신 '명확한 규칙'으로 모두를 공정하게 '존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