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첫 데이트 (가까운 듯 먼 듯, 너와 나의 거리)

도환의 시점(유블리안)

by 유블리안




첫 만남 이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카톡으로 몇 번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알게 된 것은 은하 씨가 생각보다 훨씬 다정하고, 귀여운 면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텍스트 너머의 그녀는 편안했지만, 막상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애프터 신청’ 날이 밝아오자 내 심장은 다시금 엇박자로 뛰기 시작했다.


​장소는 식물들이 가득한 대형 카페로 잡았다. 옷차림도 신경 썼다. 과한 포마드는 생략하고, 자연스럽게 넘긴 머리에 깔끔한 네이비 니트와 슬랙스를 매치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제법, 아주 제법 괜찮아 보였다.


​“후우... 도환아, 오늘은 뇌 정지 오지 말자. 침착하게, 배려있게. 알았지?”


​나는 약속 장소에 20분 일찍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창가 자리, 적당한 조명, 은은한 커피 향.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이제 주인공만 등장하면 된다.


​약속 시간 5분 전.


딸랑- 하고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들이마시려던 숨이 턱 하고 멈췄다.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은하 씨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지난번 첫 만남 때의 화려했던 모습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뭐랄까, 봄바람 그 자체였다.


​‘와... 진짜 예쁘다.’


​심장이 쿵쾅대다 못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기세였다.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도환 씨! 일찍 오셨네요?”


“아, 네! 은하 씨, 어서 오세요. 저도 방금 왔습니다.”


​거짓말쟁이 구도환! 20분 전부터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으면서 ㅋㅋㅋ. 하지만 나는 최대한 여유로운 척 의자를 빼주며 그녀를 맞이했다.


은하 씨가 겉옷을 벗자 은은한 꽃향기가 훅 끼쳐왔다. 지난번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감이 실감 났다.

​우리는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를 시켜놓고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지난번의 ‘아무 말 대잔치’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내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 카페 시그니처가 아인슈페너라던데, 맛이 괜찮으세요?”


“네! 크림이 진짜 달콤하고 맛있어요. 도환 씨는 쓴 커피 좋아하시나 봐요?”


“아, 네. 저는 아메리카노만 마셔서요. 은하 씨가 달달한 거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여기로 왔는데 다행이네요.”


​은하 씨는 “어머, 기억하고 계셨어요? 센스쟁이시네요.”라며 까르르 웃어주었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눈꼬리가 반달처럼 휘어지는 게 신기해서, 나는 자꾸만 커피를 마시는 척하며 그녀를 관찰했다.


​어느 정도 대화가 무르익자 우리는 카페를 나서 근처 산책로를 걷기로 했다. 저녁 공기는 선선했고,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는 걸음이 빠른 편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앞서 나가려던 내 발이 멈칫했다.


​‘아니지, 천천히. 은하 씨 힐 신었잖아.’


​나는 슬쩍 곁눈질로 그녀의 발을 확인했다. 굽이 꽤 있는 구두였다. 나는 내 평소 보폭을 반으로 줄였다. 왼발, 그리고 잠시 쉬고 오른발. 그녀의 또각또각 구두 소리에 내 발소리를 맞췄다.


​나란히 걷는 길. 우리 사이의 거리는 주먹 두 개 정도. 손등이 스칠 듯 말 듯 한 이 미묘한 거리감이 나를 미치게 했다. 잡고 싶다. 아니야, 아직은 일러. 섣불리 잡았다가 따귀 맞을 수도 있어.

​나는 뒷짐을 지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애써 딴청을 피웠다. 대신 온 신경을 그녀의 발걸음에 집중했다. 그녀가 잠시 풍경을 보느라 느려지면 나도 느려졌고, 그녀가 다시 걸으면 나도 걸었다.


​그렇게 10분쯤 걸었을까. 갑자기 은하 씨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왜... 왜 웃으세요?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내가 당황해서 묻자, 은하 씨는 고개를 저으며 나를 보았다. 가로등 불빛을 받은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아니요, 그냥 좋아서요.”


“네? 뭐가...”


“도환 씨, 아까부터 저한테 걸음 맞춰주고 계시잖아요. 평소엔 되게 빠르실 것 같은데.”


​들켰다. 아니, 알아봐 주었다. 나의 사소한 배려를.


​“아... 제가 걸음이 좀 빠른 편이라, 은하 씨 불편하실까 봐...”


내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나, 은하 씨는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 미소는 예의상 짓는 미소가 아니었다. 편안함, 그리고 아주 약간의 설렘이 묻어있는 진짜 미소였다.


​“고마워요. 덕분에 편하게 걷고 있어요. 보통 남자분들은 자기 속도대로 가서 제가 뛰다시피 쫓아가야 할 때가 많았거든요.”

​그녀의 목소리가 한 층 부드러워졌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와의 물리적 거리를 반 뼘 정도 더 좁혔다. 이제는 옷깃이 살짝살짝 스칠 정도의 거리.


​“앞으로도 계속 맞춰 드릴게요. 은하 씨가 뛰지 않게.”


​이번엔 좀 멋있었나? 내 말에 은하 씨는 대답 대신 살짝 고개를 숙였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는 숨기지 못했다.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손은 잡을지 말지 고민했지만, 발걸음 소리가 하나의 리듬처럼 딱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또각, 뚜벅. 또각, 뚜벅.


​미묘했던 거리감이 좁혀지는 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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