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의 시점(은나무)
소개팅이 끝난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이
어제 만난 그 남자라는 사실이
조금… 아니, 꽤 의외였다.
나는 원래 사람에게 감정이 빨리 생기지 않는다.
첫 만남이 설렌 적도 거의 없고,
소개팅은 그저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말지”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어제의 그 사람,
도환 씨는 조금 달랐다.
말이 많아서 피곤하다는 생각도 들긴 했는데 그 진심이 서툴게 느껴져서
이상하게 귀엽기운 생각도 들었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휴대전화를 확인했지만
새 메시지는 없었다.
나는 별 감정 없이 씩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 뭐.”
나에게 소개팅 상대와 대화는
급박하게 템포를 맞춰야 하는 전쟁이 아니었다.
나는 원래 잠시 생각하고,
정리하고, 내 속도에 맞게 답하는 편이라
답장 하나에도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래서 출근 준비를 하며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머리를 묶고, 커피를 내리고,
매장에 가져갈 물건을 챙겼다.
집에서 매장까진 30분 정도 거리이다.
조금 더 안정적인 자리에서 자리를 잡다 보니 출퇴근 거리가 조금 멀었다.
나는 운전을 좋아하다 보니 30분 거리는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 휴대전화를 진동모드로 해놓는 게 습관인 나는 (매장에서 개인 휴대전화가 울리는 건 손님께 매너가 아니라 여김. ) 그날도 여전히 진동모드인 휴대전화를 들고 차에 올랐다.
쳐지는 발라드도 정신없는 신나는 노래도 아침에 듣기엔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살짝 미디엄 템포의 약 10년 전 유행하던 노래를 듣는 걸 좋아한다. 흥얼흥얼 콧노래와 함께 30분이 걸려 매장에 도착했다.
도착하면 직원들은 이미 출근해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준비해서 각자 자기 일을 하고 있고 나 역시 그날의 예약이나 직원들에게 전달 사항을 전해주는 시간을 잠시 갖는다.
그 시간이 끝나고 일할 준비를 마치면 나는 그제야 내 자리에서 따뜻한 라떼 한잔과 휴대전화를 들여다본다.
응?? 메시지가 하나 와있었다.
[도환 : 은하 씨, 잘 주무셨나요?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15분 전 가게에 막 도착했을 때 온 거 같은데
내가 오늘의 일을 준비하느라 진동을 못 느꼈나 보다.
나는 잠시 그 메시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첫 느낌은 ‘부지런하네.’
두 번째 느낌은 ‘귀엽다.’
그리고 세 번째 느낌은
‘뭐지? 이 설레는 기분은…?’
그렇게 또 5분이 지났다.
내가 메시지를 읽고 또 읽으며 도환 씨가 보내온 한 문장에
나도 모르게 도환 씨를 여러 방면으로 탐색하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도환 씨가 기다리면서
혹시라도
‘내가 불편했나?’
‘싫었나?’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살짝 미안해졌다.
답장을 쓰기 직전
나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네 도환 씨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전 지금 막 도착해서 정신이 없네요 ㅠㅠ 점심시간에 다시 톡 할게요!]
사실 조금 아까 도착해서 할 일을 마치고 쉬는 시간이지만
도환 씨가 기다리며 별 생각이 많이 들었을까 봐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점심시간 전까지 예약고객이 차 있어서 사실 연락할 시간도 없긴 했다.
문자를 보내고 나니
어깨에서 작은 긴장이 쭉 풀렸다.
그리고 묘하게,
마음 한구석이 가볍게 뜨거워졌다.
“점심시간에 다시 톡 할게요.”
내가 이런 문장을 보낼 정도면
분명 마음이 조금은 움직였다는 뜻이었다.
드라이기를 켜며
나는 괜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사람… 템포가 빠르네.
근데… 싫진 않다.”
그날 아침,
내 마음은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히
어제보다 조금 더 도환 씨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