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환의 시선(유블리안)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비쳤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먹구름이 낀 장마철이었다.
어젯밤 침대 위에서 수백 번의 ‘이불킥’을 날리느라 잠을 설친 탓이다.
눈을 뜨자마자 내 손은 본능적으로 머리맡을 더듬어 휴대전화를 찾았다.
차가운 액정의 감촉이 손끝에 닿자마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혹시... 은하 씨한테 연락이 왔을까?’
[카카오톡 : 메시지 없음]
역시나. 먼저 연락이 올 리가 없지. 나는 떨리는 손으로 채팅방을 열었다.
어제 내가 마지막으로 보낸 ‘조심히 들어가세요’ 옆에 있던 숫자 ‘1’은 사라져 있었다.
읽긴 읽었는데, 답장은 없다. 아, 맞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예의상 답장을 안 하고 잠자리에 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런데 도착하면 연락한다고 했는데 왜 연락이 없는 거지?’
불안한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출근 준비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시선은 계속 휴대전화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비장한 각오로 키패드를 눌렀다.
‘좋은 아침입니다!’... 너무 식상한가? 지우기.
‘은하 씨, 어제 즐거웠어요.’... 어제 했는데 또? 질척거려 보일 거야. 지우기.
썼다 지우기를 십수 번 반복한 끝에, 결국 가장 무난하면서도 안전한 날씨 핑계를 대기로 했다.
"은하 씨, 잘 주무셨나요?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전송 버튼을 누른 시각, 오전 8시 30분.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의 심정으로 집을 나섰다.
회사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지만, 모니터 속 엑셀 파일은 외계어처럼 보였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옆자리 영찬이가 “너 뭐 하냐? 휴대전화 뚫어지겠다.”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오전 8시 40분 : 경과 시간 10분]
‘왜 답장이 없지? 출근 준비하느라 바쁜가?’
나는 애써 긍정 회로를 돌리며 탕비실로 향했다. 물을 마시는 동안에도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혹시라도 화장실 간 사이에 답장이 오면 1초라도 빨리 확인해야 하니까.
[오전 8시 45분 : 경과 시간 15분]
슬슬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직도 안 보네? 혹시 출근길 지옥철에 갇혀서 휴대전화를 꺼낼 수 없는 상황인가? 아니면 운전 중? 그래, 운전 중에 톡 하면 위험하지. 은하 씨는 준법정신이 투철한 사람일 거야. 안전이 최고지.’
[오전 8시 50분 : 경과 시간 20분]
불안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긍정 회로가 과부하로 타버리고, 그 자리엔 부정적인 망상이 독버섯처럼 피어올랐다. 유튜브에서 봤던 ‘소개팅 망하는 신호’ 영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20분이나 지났어. 이건 말이 안 돼. 요즘 세상에 휴대전화를 20분 동안 안 보는 사람이 어디 있어? 혹시 미리 보기로 읽고 무시하는 건가?’
시나리오 1: 차단.
어제 내가 ‘심은하’ 드립을 쳤을 때, 사실은 웃은 게 아니라 비웃음이었던 거야. 집에 가서 친구들에게 “야, 어제 만난 남자 최악이야. 얼평에 아재 개그까지, 완전 꽝이야.”라고 말하며 내 번호를 차단 목록에 넣은 거지.
시나리오 2: 흥미 없음.
그냥 예의상 만나준 거고, 더 이상 엮이기 싫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려는 ‘고스팅’ 전략일 수도 있어. 내가 너무 눈치 없이 아침부터 연락해서 질린 건가?
‘은하 씨 프사(프로필 사진)나 확인해 볼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의 프로필을 눌렀다. 어제와 똑같은 꽃 사진이다. 차단당하면 프사가 안 보인다던데, 다행히 차단은 아닌 것 같다. 아니면 프로필 비공개 차단인가?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때였다.
징-
조용한 사무실의 정적을 깨고 책상 위가 짧고 묵직하게 울렸다. 나는 감전된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휴대전화를 낚아챘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켰다. 잠금 화면 위에,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이름이 3D처럼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지은하 님]
[네 도환 씨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전 지금 막 도착해서 정신이 없네요 ㅠㅠ 점심시간에 다시 톡 할게요!]
“하아...”
나도 모르게 깊은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의자에 몸을 푹 파묻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차단도 아니었다. 그저 ‘정신이 없었을 뿐’이었다.
나는 안도감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바로 은하 씨에게 답장을 보냈다.
[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따가 또 대화해요. ^^]
‘점심시간에 다시 톡 한대! 다시 톡 하겠다는 건, 나와 대화를 계속하고 싶다는 뜻이잖아!’
방금 전까지 지옥불에 떨어졌던 기분은 온데간데없고, 나는 다시 천국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20분간의 지옥 같은 전쟁은 나의 승리... 아니, 나의 생존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