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은하 ‘집모드’ 첫 공개

도환의 시선(유블리안)

by 유블리안






갑작스러운 소나기와 뜨거웠던 첫 입맞춤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우리는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근처에 있는 은하 씨의 집으로 들어왔다.


“도환 씨, 집이 좀 좁고 정리가 안 돼 있어서... 놀라지 마세요.” “아니에요! 초대해 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나는 마치 신성한 신전에 입장하는 신도처럼 조심스럽게 현관에 발을 들였다. 은은한 디퓨저 향기, 아기자기한 소품들. 모든 공간에서 ‘지은하’라는 사람의 향기가 났다. 심장이 또다시 쿵쿵대기 시작했지만, 아까의 격정적인 설렘과는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은하 씨는 나에게 갈아입을 넉넉한 사이즈의 박스티를 건네주고, 자신도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또 한 번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데이트 때마다 보았던 완벽한 세팅의 ‘여신 은하’는 없었다.


대신, 화장기 없는 말간 얼굴에 머리를 아무렇게나 질끈 묶은 ‘집순이 은하’가 서 있었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헐렁한 수면 바지 차림.


‘와... 미치겠다. 왜 이게 더 예뻐 보이지?’


완벽함 속에 가려져 있던 그녀의 무방비하고 편안한 모습. 그 ‘갭 차이’가 내 심장을 사정없이 때렸다.


“도환 씨, 배고프죠? 뭐라도 좀 만들어 드릴게요. 제가 요리는 잘 못하는데...”


은하 씨는 주방으로 가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그녀의 뒷모습을 턱을 괴고 바라보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프라이팬을 돌리는 그녀의 뒷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짜잔- 급하게 만든 ‘치즈 김치전’이에요! 좀... 모양이 그렇긴 한데.”


그녀가 내민 접시에는 치즈가 너무 녹아 흘러내리고, 테두리가 살짝(사실 꽤 많이) 탄 김치전이 담겨 있었다.


“어때요? 좀 탔죠? 아우, 내가 못 살아.”


은하 씨가 민망한 듯 혀를 쏙 내밀었다. 나는 젓가락으로 큼지막하게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바삭, 하는 소리와 함께 탄 맛... 아니, 불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그리고 뒤이어 김치의 매콤함과 치즈의 고소함이 밀려왔다.


“와... 은하 씨, 이거 진짜 맛있는데요? 저 탄 거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바삭바삭하니 완전 제 취향이에요.”


“에이, 거짓말. 맛없으면 남겨도 돼요.”


“진짜예요. 미슐랭 셰프가 와서 울고 갈 맛입니다.”


나는 진심을 담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콩깍지가 씌어서가 아니라, 그녀가 나를 위해 서툰 솜씨로 무언가를 만들어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최고의 조미료였다.


은하 씨는 그제야 안심한 듯 배시시 웃으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우리는 거실 바닥에 앉아 캔맥주를 따고 넷플릭스를 켰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낄낄거리고, 과자를 집어 먹으며 편안하게 늘어졌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이 작은 공간은 더없이 아늑하고 따뜻했다. 나는 무릎을 세우고 앉아 과자를 오물거리는 은하 씨를 힐끔 쳐다보았다. 안경이 자꾸 흘러내리는지 검지로 추켜올리는 모습, 웃을 때마다 눈이 사라지는 모습.


‘편하다.’


소개팅 때의 긴장감도, 잘 보이기 위해 꾸며냈던 가식도 필요 없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 있는 그대로의 그녀가 함께 있을 뿐이었다.


“도환 씨.”
“네?”
“도환 씨도 집에서는 되게 편안해 보이네요. 회사에서는 일밖에 모르는 엘리트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까 그냥 귀여운 동네 오빠 같아요. 과자 먹을 때 볼이 빵빵해지는 게 햄스터 같기도 하고.”


은하 씨가 내 볼을 장난스럽게 콕 찔렀다.


“아, 그런가요? 사실 저도 집에서는 완전 ‘자유인’이거든요.”


“푸하하, 자유인이요? 보기 좋은데요, 뭐. 저도 도환 씨랑 이렇게 있으니까... 그냥 원래 알던 사이처럼 편해요. 다음에는 도환 씨 집에도 초대해 주세요.”


그녀의 ‘편하다’는 말이 내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문득, 상상이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부스스한 머리의 그녀가 내 옆에 있다면?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이렇게 마주 보고 앉아 맥주 한잔할 수 있다면? 그녀가 태운 김치전을 평생 먹으며 “맛있다”라고 말해줄 수 있다면?


‘이 사람이랑... 살면 어떨까?’


결혼. 그동안 막연하고 먼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단어가, 처음으로 구체적인 현실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털며 그녀 쪽으로 몸을 기댔다. 은하 씨도 거부하지 않고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TV 속 예능인의 웃음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리고, 서로의 체온이 닿은 어깨가 따뜻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완벽한 ‘집 데이트’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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