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의 시선(은나무)
비가 멈추기 전까지, 우린 집으로 도망치듯 들어왔다.
현관에서 젖은 옷을 벗어두는 동안 둘 다 조금 어색했지만,
그 어색함마저 나쁘지 않았다.
"여기… 들어오세요. 정리가 덜 돼서 그래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누군가에게 내 공간을 열어준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그게 조금 쑥스럽고, 조금 설레고.
나는 박스티 하나를 건네고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머리도 대충 말리고 화장도 다 지워진 얼굴.
거울 속 나는 데이트에서 보이던 ‘예쁘게 만든 나’와 달랐다.
근데 이상하게, 그 모습이 더 숨기기 싫었다.
거실로 나가자
도환 씨는 내가 준 티셔츠에 젖은 머리를 털며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귀여웠다.
"좀 추우시죠?"
"아뇨… 오히려 따뜻해요."
그 목소리가 진짜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우리 둘이 젖고 뛰었던 그 몇 분이,
벌써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졌다.
치즈 김치전이 조금 타서 모양은 엉망이었지만
도환 씨는 맛있다며 한 입 한 입 크게 먹었다.
바삭하다는 말이, 진심인지 배려인지 모르겠었지만
.
그걸 따져야 하는 단계는
이미 우리가 지나온 것 같았다.
맥주를 한 캔씩 따고,
둘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넷플릭스를 틀었다.
서로 딱 붙어 앉은 것도 아닌데
움직일 때마다 팔이 스치고
숨결이 가까웠다.
어느 순간, 우리는 정말 자연스럽게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나는 화면보다 옆얼굴을 더 자주 봤다.
안경을 올리는 버릇,
뭔가에 집중하면 입술이 살짝 모아지는 표정.
방금 전 빗속에서 내가 봤던 그 얼굴이 떠올랐다.
‘아까 키스…
나 진짜로 한 거 맞지?’
그 생각이 스치자
배 위로 전기가 스르르 흐르는 것처럼 간질거렸다.
도환 씨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다음엔… 제 집에도 올래요?"
나는 별생각 없이,
"응, 좋아요."
하고 대답했다가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응 이라고 내가 말했다.
나도 좋다는 말이었다.
나도, 이 사람이 좋다는 뜻이었다.
비는 멈추지 않았지만
둘 사이 공기는 훨씬 고요하고 따뜻했다.
그날 밤, 집에 불을 끄고 누워도
첫 키스보다 더 오래 생각난 건
그가 내 집에서 편해 보이던 얼굴.
그리고 내가 그걸 좋다고 느꼈다는 사실.
나는 천천히 웃으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