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도환의 생일 착각 웃픈 서프라이즈 파티

진땀 흘리는 은하가 사랑스러운 도환(유블리안)

by 유블리안





결혼하고 맞이하는 나의 첫 번째 생일.


나는 대인배인 척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설마 그냥 넘어가겠어?

결혼 후 첫 생일인데. 호텔 디너? 아니면 깜짝 명품 시계?’


생일 일주일 전부터 식탁 위에 달력을 보란 듯이 펼쳐놓고,

TV에 미역국이 나올 때마다 “와, 맛있겠다”를 연발하며

밑밥을 깔아 뒀었다.


은하의 눈치라면 분명 완벽한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내 기대는 생일 당일 아침, 처참하게 박살 났다.


“으아! 늦었다! 오빠, 나 먼저 갈게! 밥 꼭 챙겨 먹어!”


은하는 미역국은커녕 물 한 잔도 못 마시고 허둥지둥 출근해 버렸다.


식탁 위에는 덩그러니 놓인 식빵 한 조각뿐.

‘생일 축하해’라는 말 한마디도 없었다.

‘와... 진짜 까먹은 거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출근하는 내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회사 동료들의 축하 인사를 받아도 기분이 나지 않았다.


점심때쯤이면 “놀랐지?” 하고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오후 6시가 넘도록 은하의 카톡은


[오늘 예약 대박 ㅠㅠ 나 좀 늦어]라는 생존 신고(?)뿐이었다.


나는 텅 빈 신혼집에 들어와 소파에 구겨져 앉았다.

서러웠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좀 삐쳤다.


내가 양말 뒤집어놓는 건 그렇게 잡으면서,

남편 생일은 이렇게 쿨하게 스킵한다고?


‘두고 보자. 내가 밥을 먹나 봐라. 오늘 단식 투쟁이다.’


나는 팔짱을 끼고 입을 댓 발 내민 채 시위 모드에 돌입했다.


그때였다.


띠띠띠띠- 쾅!

현관문이 부서져라 열리더니,

은하가 산발이 된 머리로 뛰어 들어왔다. 양손에는

검은 비닐봉지와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다.


“헉... 헉... 오빠!”


“... 왔어?


나는 최대한 차갑고 건조하게 대답하며 시선을 TV로 고정했다.


“미안해! 나 진짜 미친 건가 봐. 오빠 생일 내일인 줄 알았어...

달력에 15일로 표시해 놔서...”


은하가 울먹이며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날짜 착각. 지은하다운 이유였다.


“됐어. 바쁜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뭐. 난 괜찮아. 카톡 볼 시간도 없었을 텐데. ”


나는 짐짓 괜찮은 척했지만, 내 입술은 여전히 뾰로통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러자 은하가 부스럭거리며 비닐봉지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오빠, 이거 봐봐. 내가 오다 급하게 만들었어.”


그녀가 내민 건 스케치북이었다. 첫 장을 넘기자 삐뚤빼뚤한 글씨로

<구도환 생일 축하 대잔치>라고 적혀 있었다.


“선물 살 시간이 없어서... 대신 이거.”


은하가 쭈뼛거리며 다음 장을 넘겼다.


[쿠폰 1. 잔소리 1회 면제권]

[쿠폰 2. 도환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단, 10만 원 이하)]

[쿠폰 3. 평생 지은하 소장권 (반품 불가)]


유치했다. 초등학생도 안 할 법한 종이 쿠폰이라니.

그런데 그 급조한 티가 팍팍 나는 쿠폰들을 보는 순간,

꽁꽁 얼어붙었던 내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장에는 사인펜으로 급하게 그린 엉성한 하트와 함께

‘태어나줘서 고마워, 내 남편’이라고 적혀 있었다.


“... 이게 뭐야. 진짜 유치하게.”


나는 피식 웃음이 터지는 걸 참으려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씰룩거리는 광대뼈는 숨길 수가 없었다.


“화 풀 거야, 안 풀 거야?

나 이거 쓰느라 엘리베이터에서 매직 냄새 풍기면서 왔단 말이야.”


은하가 내 팔을 흔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땀에 젖은 앞머리, 헐떡이는 숨소리,

그리고 미안함과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

그 모습을 보고도 계속 삐져 있을 수 있는 남자는 세상에 없을 거다.


“... 쿠폰 2번, 지금 쓸게.”


“어? 뭐? 10만 원 이하로 뭐 사줄까?”


은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지금 바로 미역국 끓여줘. 은하가 끓인 거 먹고 싶어.”


내 말에 은하의 얼굴이 환해졌다.


“당연하지! 내가 진짜 맛있게 끓여줄게. 3분만 기다려! 아니, 30분!”


은하는 옷도 못 갈아입고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우당탕탕 냄비 꺼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완벽한 호텔 디너는 아니었다.

하지만 땀 뻘뻘 흘리며 나를 위해 냄비를 젓고 있는 저 뒷모습이,

삐뚤빼뚤한 손글씨 쿠폰이, 나에게는 세상 그 어떤 명품보다

값비싼 선물이었다.


식탁에 앉아 은하를 바라보는데, 자꾸만 웃음이 났다.


이 엉성하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내 아내라니.

이번 생일은 정말 완벽하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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