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의 민망하지만 귀여운 빠른 대처(은나무)
결혼하고 맞는 첫 번째 남편의 생일.
사실 말하자면
나는 그날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었다.
미역국은 기본이고,
오빠가 요즘 눈독 들이던 운동화도 살짝 알아봤고,
저녁엔 집에서 조촐하게 케이크라도 켜놓고
“결혼하고 첫 생일이야” 같은 말도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날짜를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거다.
정확히 말하면
달력에 15일이라고 큼지막하게 동그라미를 쳐놓고
그걸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니까…
모든 비극은 거기서 시작됐다.
그날 아침,
나는 진짜 정신이 없었다.
예약은 왜 그렇게 몰렸는지,
지각 직전이었고
그는 이미 옷을 입고 있었고
나는 가방을 들고 뛰어다니며 말했다.
“으아! 늦었다! 오빠, 나 먼저 갈게! 밥 꼭 챙겨 먹어!”
그때도 전혀 몰랐다.
오늘이 그날이라는 걸.
미역국은커녕
“생일 축하해”라는 말조차 못 하고
현관문을 닫고 나와버렸다는 걸.
미용실에 도착해서
손님 머리를 하다가
문득 휴대폰 날짜를 봤다.
14일.
그 순간,
내 심장이 진짜로 쿵 내려앉았다.
‘…어?’
달력을 다시 봤다.
내가 그려둔 동그라미.
15일.
그리고 오늘.
14일.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는 데
0.3초도 안 걸렸다.
‘아… 나 미쳤다.’
손에 들고 있던 가위를 내려놓고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필 그날따라
예약은 끝이 없고
컴플레인 손님까지 끼어들고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시간은 미친 듯이 흘러갔다.
오빠한테
“미안해”
“내가 지금…”
이런 말 하나 보내고 싶었는데
손님 앞에서 그럴 수도 없고
마음은 계속 조급해졌다.
[오늘 예약손님 대박. 늦을듯]
결국 핑계 아닌 핑계 카톡만 보냈다.
그러다 겨우 마감.
나는 진짜 뛰었다.
머리는 산발,
가방은 열려 있고
근처 마트에서 아무 케이크 집어 든채
집에 도착했을 때는
숨이 헐떡거릴 정도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도환 오빠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표정이…
아주 단단했다.
“헉… 헉… 오빠!”
“…왔어?”
아, 이 톤.
이미 늦었다는 걸 직감했다.
“미안해! 나 진짜 미친 건가 봐. 오빠 생일 내일인 줄 알았어…
달력에 15일로 표시해 놔서…”
말하면서도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도환 씨는
괜찮은 척했다.
“됐어. 바쁜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뭐.”
괜찮은 척하는데
입은 뾰로통.
누가 봐도 삐진 사람.
아, 이 남자 진짜.
나는 가방에서
급하게 준비한 스케치북을 꺼냈다.
“오빠, 이거 봐봐. 내가 오다 급하게 만들었어.”
<구도환 생일 축하 대잔치>
글씨는 삐뚤고
마커 냄새는 아직도 났다.
[잔소리 1회 면제권]
[도환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10만 원 이하)]
[평생 지은하 소장권 (반품 불가)]
쓰면서도
‘이게 뭐냐’ 싶었지만
그래도 안 하면 더 후회할 것 같았다.
마지막 장에 적은 말.
태어나줘서 고마워, 내 남편.
그걸 보는 순간
도환오빠의 얼굴이
아주 조금 풀리는 게 보였다.
“이게 뭐야. 진짜 유치하게.”
웃음을 참는 얼굴.
아, 이 표정.
“화 풀 거야, 안 풀 거야?
나 이거 쓰느라 엘리베이터에서 매직 냄새 풍기면서 왔단 말이야.”
“쿠폰 2번, 지금 쓸게.”
“어? 뭐? 10만 원 이하로 뭐 사줄까?”
그가 내 허리를 끌어안고 말했다.
“미역국 끓여줘. 은하가 끓인 거.”
순간,
가슴이 꽉 찼다.
“당연하지! 내가 진짜 맛있게 끓여줄게.
3분만 기다려! 아니, 30분!”
나는 그대로 주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냄비 꺼내고
미역 불리고
마늘 다지고
마음도 같이 끓였다.
완벽한 서프라이즈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하루 종일
서운해 하는 그의 얼굴이 마음에 걸렸고
집에 들어오는 순간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더 크게 남았다.
주방에서 미역국을 끓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내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허둥대도
그래서 더 웃게 되는 사람을
사랑해 주는구나.’
뒤돌아보니
소파에 앉아
나를 보며 웃고 있는 남편 구 도환 씨.
아, 진짜.
이번 생일은
내가 실수했는데
마음은 제대로 전한 날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의 다음 생일엔
달력부터 다시 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