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환의 완벽주의가 불러온 참사(유블리안)
신혼의 달콤함은 유통기한이 짧았다.
적어도 거실 한복판에 펼쳐진 ‘빨래 건조대 대참사’를
목격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결혼하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야근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씻기 위해 욕실 앞을 지나다가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아침에
“저녁에 내가 와서 널 테니까 그냥 둬”
라고 신신당부했건만, 일찍 퇴근한 은하 씨가
나를 배려한답시고 이미 빨래를 널어둔 상태였다.
문제는 그 ‘상태’였다.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건조대 앞으로 다가갔다.
검은색 양말과 흰색 와이셔츠가 서로 엉켜서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있었고,
수건은 끝을 맞추지 않아 삐뚤빼뚤하게 널려 있었다.
심지어 내 소중한 슬랙스는 주름을 펴지 않은 채
쭈글쭈글한 상태로 집게에 집혀 있었다.
‘이건... 테러다. 내 질서 정연한 빨래 생태계에 대한 무자비한 테러야.’
“어? 오빠 왔어? 빨래 내가 다 널었어! 잘했지?”
안방에서 나오며 해맑게 웃는 그녀.
칭찬을 바라는 저 강아지 같은 눈망울을 보라.
차마 “이게 뭐야!”라고 소리칠 수는 없었다.
나는 떨리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며 말했다.
“아... 응. 고마워. 그런데... 양말이랑 속옷은 좀 따로 널고,
수건은 탁탁 털어서 각을 잡아야 하는데...”
“에이, 뭘 그렇게 따져? 어차피 마르면 다 똑같은데.
대충 해~ 사는 것도 바쁜데 빨래에 에너지 쓰지 말자, 우리.”
은하는 내 어깨를 툭 치며 쿨하게 냉장고로 향했다.
‘대충 해’라니. 세상에 대충 해도 되는 집안일은 없다.
작은 무질서가 모여 결국 집안은 카오스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날 이후, 나의 신경은 온통 집안일에 곤두서기 시작했다.
치약 짜는 방식(끝 vs 중간), 휴지 거는 방향(앞 vs 뒤), 설거지 쌓기(분류 vs 젠가 놀이). 우리의 생활 방식은 너무나 달랐다. 내 안의 ‘시어머니 DNA’가 꿈틀거렸다.
결국 사건이 터졌다. 발단은 ‘양말 뒤집기’였다.
퇴근 후 빨래 바구니를 확인하던 나는 은하가 벗어둔
양말 두 짝이 또 동그랗게 말린 채 뒤집혀 있는 걸 발견했다.
벌써 이번 주만 세 번째다.
“은하야, 잠깐만 나와 볼래?”
“왜? 무슨 일 있어?”
“내가 양말 벗을 때 펴서 넣어달라고 했잖아.
세탁기가 마법 상자도 아니고, 이거 일일이 뒤집는 것도
일이란 말이야.
그리고 수건도 제발 호텔식으로 개라고 했잖아!”
나도 모르게 잔소리 폭격이 쏟아졌다.
은하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야, 구도환!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뭐가 너무해. 맞는 말이잖아.”
“나는 뭐 놀아?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다 들어와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데, 돕겠다고 한 거잖아.
넌 내 노력은 안 보이고 그깟 양말 뒤집힌 것만 보이니?
그렇게 맘에 안 들면 너 혼자 다 하든가!”
쾅!
은하가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실에 홀로 남겨진 나는 덩그러니 놓인 양말 뭉치를 바라보았다.
꼬질꼬질한 양말.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그녀의 발이 퉁퉁 부어 있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느라 다리가 아팠을 텐데,
집에 오자마자 잔소리를 들었으니 얼마나 서러웠을까.
‘아... 내가 또 실수했네. 집이 군대 내무반도 아닌데.’
후회가 밀려왔다.
깔끔한 집보다 중요한 건 웃는 아내인데.
나는 주섬주섬 양말을 펴서 세탁기에 넣고,
안방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은하가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 미안해. 내가 예민했어. 자기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짜증만 내고... 나 진짜 나쁜 놈이다.”
“......”
“내가 정리 정돈에 좀 병적인 집착이 있는 거 인정해.
은하는 잘못 없어. 그냥 내가 유별난 거야.”
내 자아비판에 은하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알긴 아네. 너 진짜 시어머니보다 더해. 깐깐징어 같으니라고.”
“맞아, 나 깐깐징어 할게. 그러니까 화 풀어, 응?”
은하 씨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몸을 일으키며 비장하게 말했다.
“대신 조건이 있어. 앞으로 빨래랑 정리는 오빠가 다 해.
오빠 기준 맞추다간 나 탈모 올 것 같아.”
“어... 그럼 자기는?”
“난 요리랑 설거지할게.
설거지는 내 맘대로 쌓아둘 거니까 터치 금지.
대신 밥은 맛있게 해 줄게. 어때?”
그녀의 제안을 듣고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나의 꼼꼼함이 빛을 발하는 정리를 내가 하고,
맛있는 밥을 얻어먹으면서 설거지 지옥에서 해방된다?
이건 ‘대박 딜’이다.
“콜! 아주 합리적입니다. 충성!”
우리는 침대 위에서 엄숙하게 손을 맞잡고
‘집안일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그날 밤,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빨래 건조대 앞에 섰다.
각 맞춰 접히는 수건을 보며 희열을 느끼고,
주방에서 풍겨오는 라면 냄새에 군침을 삼켰다.
서로를 바꾸려 들지 않고, 각자가 잘하는 것을 하기로 한 선택.
‘그래, 은하 씨는 대충 널어도 예쁘고,
나는 각 잡고 개야 마음이 편한 놈이니까.’
오늘도 나는 기꺼이 행복한 ‘깐깐징어’가 되어 팬티를 삼단으로 접는다.
주방에서 나를 보며 “오빠, 김치 꺼낼까?”라고 묻는 나의
사랑스러운 아내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