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엄마를 슬프게 하지 않아야 해, 엄마를 웃게 해야 해!
우리는 모두 일찍 어른이 되었다.
누구도 새 옷을 조르지 않았다.
남들과 다르다고 투정 부리지 않았다.
사춘기란 단어조차 낯설게,
각자의 자리에 조용히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뼈를 갈아 일하는
엄마를 보며 자란 오남매는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엄마의 힘듬을 먼저 생각했다.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사고 싶은 게 있어도 참았다.
삼남도 그랬다.
일하고 온 엄마가 잘 때 신음소리라도 내면,
엄마마저 죽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과 이야기하다 눈물이라도 흘릴 때면
우리 때문에 참고 사느라 슬픈 게 아닐까 염려됐다.
삼남은 타고난 성향상 다른 사람의 감정을
거울처럼 느끼는 성향이었다.
엄마의 슬픔은 삼남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더 이상 엄마를 슬프게 하지 않아야 해.
엄마를 웃게 해야 해.’
삼남은 늘 다짐했다.
더 열심히 공부했고,
더 모범적이고 착한 아이가 되었다.
“엄마, 나 우등상 탔어. 엄마 나 모범상 탔어.”
삼남이 상을 탈 때,
엄마의 얼굴 가득 핀 웃음꽃이
삼남에게 각인됐다.
더 열심히, 엄마를 기쁘게 하자.
내가 더 잘 하자.
삼남은 날마다 그렇게 다짐했다.
삼남의 엄마는 누구보다 엄격한 사람이었다.
자식들이 애비없이 자라
‘버릇없는 호로자식’이라는 말 듣는 걸 견디지 못했다.
순례는 오남매가 잘못을 할 때면 매를 들었다.
엄한 아비 노릇과 사랑 많은 엄마 노릇
둘 다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쌀가루를 젓던 그 탱자 나뭇가지로
보이는 곳을 아무데나 때렸다.
순례가 오남매를 때릴 때면
온 동네 울음소리와 싹싹 비는 소리가 떠나갈 듯 했다.
한 명이 잘못하면 다 같이 맞았다.
순례가 매를 들면 오남매는
마당을 지나 집앞 도로까지 도망가야 했다.
그만큼 무섭고 매정했다.
특히 큰 오빠와 작은 언니가 더 많이 맞았다.
큰 아들이 누나에게 대드는 걸 순례는 보지 못했다.
남녀 차별없이 깔끔한 서열정리 덕분에 삼남의 집은
나보다 큰 형제에게 대드는 일이란 있을 수 없었다.
순응을 배웠다.
그리곤, 때린 자식의 상처에 약을 바르며 눈물을 흘렸다.
“오매오매, 내 새끼. 보기도 아까운 내 새끼를, 겁나 부섰네(부었네).
반바지 입어야 쓴디, 우짠대…”
병 주고, 약 주고....
눈물로 입맞춤하던 밤들이 있었다.
보기도 아까운 아빠 없는 자식들
잘못을 매로 다스린다는 건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에게도 소중한 아이가 남에게도 소중한 사람이길
내 자식이 어디가서 천대받지 않기를,
환영받는 존재이길 바라는 애끓는 엄마의 사랑이리라.
오남매는 어긋날 수 없었다.
삼남은 가끔 생각한다.
자신이 참는 게 몸에 밴 건,
엄마가 늘 참았기 때문 아닐까.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잘해야 한다고 믿었던 건,
엄마가 그리 살아왔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삼남도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내 아들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사랑하고, 참고, 혼을 냈다.
무섭게 훈육하면서도 사랑을 줄 땐
한없이 주는 사람으로 살았다.
삼남은 엄마의 딸이었다.
그 사랑과 눈물, 인내, 엄격함을
고스란히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