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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3화. 마음을 품어주는 이불, 엄마의 밥상

그리운 건, 맛이 아니었다. '어서 묵어'하는 그 눈빛...

by 마음리본

동생을 4명이나 거느린 장녀는

한겨울 마당에 묻은 항아리에서

김치를 꺼내 쓱쓱 썰고,

연탄불에 김을 구워 잘랐다.


개수를 세어 똑같이 나눈

구운 김에

윤기 좔좔 흐르는

흰 쌀밥을 싸서

참기름 한 방울 넣은 간장을 콕 찍어 먹으면

어찌나 맛있던지

김이 빨리 사라지는 게

아쉽기 그지 없었다.


말없이 오물거리던 입술 너머,

엄마의 애정은

한 숟갈 한 숟갈 배어 있었다.

김장 김치, 싱건지, 구운 김, 간장.

재료는 단출했지만,

그 밥상은 오남매 모두를 품는 커다란 품이었다.

함께 나눈 밥상 속

그 겨울들은 춥지 않았다.

전라도 땅끝,

서종의 2월은 얼음도 일찍 녹는 따뜻한 땅이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 처음 맞은 서울의 겨울,

추위는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방 안에서조차 입김이 나왔고,

몸을 감싸도 마음 한구석은 늘 시렸다.


그때 알았다.

그리움은 온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도시 자취방에서 얼린 곰국을 데워 먹을 때면,

삼남은 엄마의 밥상이 그리웠다.

그리운 건 맛이 아니었다.

그 눈빛,

“어서 묵어”

하며 내미는

엄마의 손끝,

사랑이었다.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게

젤 행복하다는 그 시선...


고향을 떠나 결혼하기 전까지,

꽤 오랫동안 마음 한 구석이 시렸다.

영혼의 안식처를 잃어버린 듯.....


몽글몽글 피어오르던 연기,

고스름한 밥 짓는 냄새,

왁자지껄한 밥상,

이웃과 나누던 따뜻했던 음식들,

그 밥상이 없어진 객지가 그렇게 추울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문득,

엄마가 보내온 시금치 나물.

참기름 듬뿍, 들깨가루 한 줌.

다듬는 손길이 선연한 그 나물을 입에 넣었을 때

삼남은 알았다.

엄마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건 기도였고, 마음을 품어주는 이불이었다.

그리운 것은 밥상이 아니라,

그 밥상을 둘러앉았던 다정했던 우리의 시간,

그 시절의 엄마, 그 시절의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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