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지만, 따뜻했다. 추웠지만, 외롭지 않았다...
그래도, 서종의 사계절은
삼남의 기억 속에 늘 따뜻했다.
눈을 비비며 대문턱에 걸터앉으면,
저 멀리 논 위로 해가 붉게 떠올랐다.
햇살은 저수지 위에서
반짝이는 윤슬을 만들고,
그 빛은 집 안 깊숙이까지 흘러들었다.
봄이면 개울 따라 쑥향이 피어올랐고,
삼남과 소꿉친구는 흙 묻은 손으로
쑥을 캐러 들판을 헤맸다.
맑은 공기 속에서 쑥은 그냥 된장국거리가 되었고,
들녘은 어떤 식탁보다 풍성했다.
여름이면 개울가에서 수박을 식히고,
언니들과 냇가에 앉아 빨래를 했다.
나무 그늘 아래, 옥수수를 삶는 엄마 옆,
돗자리를 깔고 엎드려
방학 숙제를 하고,
돌멩이로 공기놀이를 했다.
아버지의 역작인 막둥이 남동생의
머리를 묶어주며,
미용실 놀이로 깔깔거리던 날들.
연기 피우던 모깃불 냄새,
평상에 누워 바라보던 별빛.....
그것들은 삼남의 마음 깊은 곳,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안식처였다.
가난했지만, 따뜻했다.
추웠지만, 외롭지 않았다.
밤이면 마당 평상에 모기장을 치고
식구들이 둘러 누워 잠이 들었다.
새벽 공기가 차가워지면,
동생의 이불을 살그머니 끌어당겨 몸을 말았다.
큰엄마가 준 수박을 꾸역꾸역
목구멍에 밀어넣은 날이면
꼭 밤중에 오줌이 마려웠다.
뒷간에 혼자 가기 무서워 깨우면
졸린 눈을 비비며 졸졸 따라와
보초 서 주던 남동생.
달빛 아래 누운 다섯 남매,
그 한가운데엔 늘 엄마가 있었다.
날씨가 쌀쌀해져 방안에 요강을 들여놓은 날,
오남매 잠투정에 발로 채인 요강에서
오줌이 와르륵 쏟아져
온 이불을, 베개를, 머리카락을 적셨던 날,
자다가 온 식구가 일어나
한바탕 샤워 대란이 벌어졌던 일...
욕실 없는 집.
세수라도 하려면 마당 수돗가에 나가
고양이 세수를 하곤 했다.
"오매, 고양이가 친구하작 하겄네.
꾸중물 찍찍 흘러서 쓰겄냐?"
보다 못한 순례가 방 안에 커다란 고무 다라이를 놓고
뜨거운 물을 여러 번 부어
가정식 목욕탕을 만들곤 했다.
한 두명씩 고무탕에 들어가 때를 불리면
순례는 한 명씩 탕 밖으로 빼내어 때를 밀었다.
손 힘 좋은 엄마가 때를 밀면
삼남은 꼭 살이 벗겨져 나갈 듯 아팠다.
그 힘 좋던,
살이 벗겨져 나가도록 때를 밀던
젊은 엄마가
지금... 그립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