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건, 맛이 아니었다. '어서 묵어'하는 그 눈빛...
동생을 4명이나 거느린 장녀는
한겨울 마당에 묻은 항아리에서
김치를 꺼내 쓱쓱 썰고,
연탄불에 김을 구워 잘랐다.
개수를 세어 똑같이 나눈
구운 김에
윤기 좔좔 흐르는
흰 쌀밥을 싸서
참기름 한 방울 넣은 간장을 콕 찍어 먹으면
어찌나 맛있던지
김이 빨리 사라지는 게
아쉽기 그지 없었다.
말없이 오물거리던 입술 너머,
엄마의 애정은
한 숟갈 한 숟갈 배어 있었다.
김장 김치, 싱건지, 구운 김, 간장.
재료는 단출했지만,
그 밥상은 오남매 모두를 품는 커다란 품이었다.
함께 나눈 밥상 속
그 겨울들은 춥지 않았다.
전라도 땅끝,
서종의 2월은 얼음도 일찍 녹는 따뜻한 땅이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 처음 맞은 서울의 겨울,
추위는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방 안에서조차 입김이 나왔고,
몸을 감싸도 마음 한구석은 늘 시렸다.
그때 알았다.
그리움은 온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도시 자취방에서 얼린 곰국을 데워 먹을 때면,
삼남은 엄마의 밥상이 그리웠다.
그리운 건 맛이 아니었다.
그 눈빛,
“어서 묵어”
하며 내미는
엄마의 손끝,
사랑이었다.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게
젤 행복하다는 그 시선...
고향을 떠나 결혼하기 전까지,
꽤 오랫동안 마음 한 구석이 시렸다.
영혼의 안식처를 잃어버린 듯.....
몽글몽글 피어오르던 연기,
고스름한 밥 짓는 냄새,
왁자지껄한 밥상,
이웃과 나누던 따뜻했던 음식들,
그 밥상이 없어진 객지가 그렇게 추울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문득,
엄마가 보내온 시금치 나물.
참기름 듬뿍, 들깨가루 한 줌.
다듬는 손길이 선연한 그 나물을 입에 넣었을 때
삼남은 알았다.
엄마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건 기도였고, 마음을 품어주는 이불이었다.
그리운 것은 밥상이 아니라,
그 밥상을 둘러앉았던 다정했던 우리의 시간,
그 시절의 엄마, 그 시절의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