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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4화. 결핍은 어둠 속 뿌리를 키우는 시간이다.

일찍 죽어버린 아빠 같은 것! 아버지라는 울타리 같은 것 필요없다고...

by 마음리본

“이렇게 많이 모여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문중 시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삼남의 아버지를 비롯한

오씨 문중의 시제가 시작되었다.


볕 잘드는 공동묘지,

대리석으로 닦은 터에 줄을 맞춰 심은 평장묘.

가로40, 세로 30센티미터 정도 되는 평장묘 안에

유골함이 들어있다.


다리가 불편했던 한 남자,

5명의 자식을 남긴,

삼남에겐 이름도 지어주지 않던

아빠가 묻혀있다.


삼남은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이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딸 이름도 지어주지 않을만큼 아들 타령을 했던 아빠는

아들이 커가는 것도 보지 못하고 죽었다.

무책임하게, 엄마 홀로 남겨놓고...


삼남은 그 아빠가 항상 원망스러웠다.

책임도 못 질 거면서.

자식은 다섯이나 낳고.

엄마 속만 썩이고,

일찍 죽어버린 아빠 같은 것!

자기 몸 하나 건사 못한 무책임한 사람은

없어도 좋다고.....

아버지라는 울타리 같은 것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남의 마음 한 켠이 늘 쓸쓸했던 건

무능하고 못난 아버지라도

있길 바래서였기 때문 아닐까?

없는 게 더 나았다고 우길수록

더 크게 느껴진 육신의 아버지,

그 존재의 부재...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가정을 꾸리고

안전한 울타리를 만든 건 아닐까?

삼남도 몰랐던 마음 속 결핍을

그렇게 메우려고 했던 건 아닐까?


결핍은 성장의 밑거름이자,
어둠 속에서 뿌리를 키우는 시간이었다.

햇살이 비스듬히 묘역을 감싸고,
바람은 대리석 사이를 스치며

잔디 위에 길게 사람들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향 냄새와 흙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스치고,
멀리선 참새 울음이 들려왔다.


삼남은 묘비 위로 내려앉은 꽃잎을 가만히 바라봤다.
없어도 된다고 부정했던 자리,
그 자리를 지우려 애썼던 날들이
사실은 오래 쓰다듬고 있었던 시간임을
오늘에야 알 것 같았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그녀를 더 멀리, 더 세게 밀어냈다.
흔들리지 않는 울타리를 갖고 싶다는 바람이
삼남을 서둘러 어른으로 만들었다.


허기 속에서 자란 마음은
더 단단해졌고,
목마름 속에서 자란 눈은
더 먼 곳을 보게 되었다.


이 묘역 앞에 선 발끝,
아버지의 부재가
결국 삼남을 이 자리까지 이끈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 내일부터는 2부. 좋은 선생님이라는 착각 편으로 이어가겠습니다.

라이킷과 응원 모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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