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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0화. 악몽, 그리고 철든 아이

오빠 나이 열한 살이었다.

by 마음리본
오빠는 우리 집 사고뭉치였다.

5살짜리 개구쟁이는 남의 집 담장을 뛰어넘다 다리가 부러졌다.

아빠가 간암으로 병원에 누워 계시던 때였다.

10층엔 아빠가,

6층엔 오빠가 누워 있었다.

엄마는 그때를

“아조 딱 죽어불것드라고”

로 표현했다.

치료비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

잠깐이나마, 누굴 먼저 살려야 할지 고민했었다고.

하지만 세상은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다.

아빠는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병이었고,

오빠는 치료 가능한 부상이었다.


아빠가 떠난 뒤, 오빠는 누구보다 빨리 철이 들었다.

새벽이면 조용히 일어나

엄마가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도록

혼자 연탄을 갈았다,

신문을 돌렸고,

떡방앗간 일을 도왔다.

“현수는 겁나 쑹악해갖고.

내가 인나보믄 연탄을 갈아놔 부렀제.

딸들은 다 잔디, 우리 큰아들은 꼭 일어나 있었당께.

나보다 부지런한 사람이 느그 오빠다.”

엄마는 아부지 없는 장남이 커가는 게

대견하면서도 마음 아팠다고 했다.



그러다가 그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설 명절을 앞둔 겨울이었다.

떡가루를 빻는 기계가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떡방앗간 안은 땀으로 젖었고,

그 한가운데, 오빠가 있었다.

추위를 막기 위해 두툼한 파카를 입은 채,


오빠는 쌀이 기계 아래로 잘 빠지도록

탱자나무로 만든 긴 막대기를 들고 서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무심코 스친 파카 소매가 기계 모터에 빨려 들어갔다.

파란색 소매 끝이 기계 속으로 사라지며

함께 팔이 끌려들었다.

오빠는 소리치지 않았다.

얼굴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그저, 차분한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팔 들어가부렀네.
스위치 좀 내려주소.”


엄마는 그 말에 피가 얼었다고 했다.

기계에 갈린 팔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 있었고,

심줄이 드러나 있었다.

구급차가 떡방앗간 앞에 도착했을 때,

오빠는 울지 않았다.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오빠의 팔을 감싸며

광주까지 차를 타고 갔다.

가는 내내 오빠는 담담했다.

피가 쉴새없이 흐르는 와중에도.

5살에 다리가 부러져 아프다고


간호사들을 못살게 굴던 오빠는

몇 년만에 살점이 떨어져나가도

울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오빠 나이 열한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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