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2화. 인생에 3할만 쳐도, 엄청난 거야!

타석을 벗어나는 게 어리석은 거지...

by 마음리본

-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실제와 무관하게 재구성된 허구이며,

특정 개인이나 기관을 지칭하거나 묘사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


얼굴이 한껏 죽상인 채로

풀이 죽은 효민이가 집에 돌아왔다.

운전 면허 기능 시험을 보고 오는 길이었다.

표정만 봐도 결과를 알 수 있었다.


"떨어졌어?"

"응..."

"근데 사고도 냈어."


삼남과 남편이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남편은 별거 아니라는 듯, 쿨하게 말했다.


"잘했어. 이럴 때 사고내지, 언제 사고 내겠어.

연습 2번 하고 어떻게 시험에 합격을 하래는 거야?

말이 안 되지, 시험치는 비용만 자꾸 내라는 거지, 뭐."


효민이는 그 날 이후, 시뮬레이션 영상을 매일 봤다.

아빠에게 질문을 하며, 상황별 대처법을 함께 숙지했다.

효민이는 두 번째 기능 시험에서 합격했다.

문을 열고 만면에 미소를 띄는 효민이.


"합격?"

"응, 근데 거의 떨어질 뻔 했어.

아무래도 학원에서 나 블랙리스트인가봐.

지난 번 사고 때 견적이 많이 나온 것 같애."


"괜찮아, 효민아. 주행 연습할 때 또 사고 내도 돼. 알았지?

학원 다닐 때 사고 내지, 언제 또 내겠어?"


'으이구, 애한테 좋은 거 가르친다.'


원체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하는 삼남은

남편의 조금은 뻔뻔스러운 저 태도가 못마땅했다.

효민이가 샤워하러 간 사이, 남편에게 한 소리 한다.


"주행 때는 위험하니까, 사고 내면 안 되지. 다치면 어쩌려구.

그리구 학원에 그렇게 손해를 끼치면 되겠어?"


"걱정 마, 큰 사고는 안 나.

옆에 운전 선생님이 핸들 붙잡는데 큰 사고 나겠어?

다 학원 비용에 포함돼 있는 거야. 보험은 괜히 드나?

지금 사고내봐야, 운전 무서운 줄도 알고, 조심한다니까.

진짜 운전할 때 사고내면 그게 큰일이지."




남편은 항상 그랬다.

애가 공부를 못 하거나, 원하던 성적이 안 나와도,


"아빠는 많은 거 안 바래.

아무 대학이나 가서, 네가 좋아하는 거 찾으면 된다."


"대학이 뭐 중요한가? 내가 다니는 대학이 서울대다~~ 생각하면 돼."


교육열 높은 삼남이 아주 울화통 터질 소리를 서슴없이 했다.


그런 남편은 두 아들을 대학에 보낸 후,

아들들 대학 과잠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그냥 뿌듯하잖아. 혼자만 보려구."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남편은 가끔 일찍 퇴근한 날이면

하교하는 아이들을 학원에서 구출해내어(?)

공터에 데려가 함께 야구를 해 주었다.

여러 번 시도해도 배트에 공이 맞지 않을 때면

실망한 효민이의 양 손을 잡고,

배트 휘두르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알았지? 너는 10번 중에 3번만 치면 3할 타자인 거야.

3할 타자는 엄청 잘하는 타자야.

야구는 7번의 실패는 인정해 준다니까. 7번은 헛스윙을 날려도 돼.

기죽지말고 어깨 펴."


삼남은 대치동에서 자신의 사소한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많이 봤다.

글씨를 여러번 썼다 지우며

종이가 찢어지도록 다시 쓰는 아이,

자신의 그림이 남보다 못 하다며,

도화지를 여러차례 구기다

결국 미술 시간마다 작품을 안 내는 아이.

발표가 두려워 말을 못하고, 그만 엎드려 울어버린 아이.

완벽해야 한다고, 틀리면 안 된다고,

내 아이는 1개라도 틀리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무언의 압박과 강요 속, 지쳐가던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해 주었던 말.


"괜찮아, 실수할 수 있어. 완벽한 사람은 없어."

"너무 다 잘하려고 하지 마. 실패는 오히려 약이야."

"학교는 안전하게 실패하는 곳이야."

"아이들에겐 실패 근육이 필요합니다, 어머님들."


자신이 했던 말들이 이제야 뼈저리게 다가온다.

그렇지. 실패는 실패가 아니지.

인생에 3할만 치면 대단한 거지. 2할도 프로 선순데.

뜻대로 안 됐다고, 그렇게 주저앉으면 안 되지.

너 너무 교만한 거 아니야?

넌 아예 실패를 안 하겠다는 거야?


"띡띡 띠디딕"

느린 현관 비번 누르는 소리.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지으며 들어오는 효민이.


"떨어졌어?"

"응, 그리구 또 사고났어."

에구머니나.

"근데 이번엔 내 잘못 아니래.

선생님이 내려서 막 뒷차 아저씨랑 싸우더라고. 뒷차가 잘못 한 거라고."


남편은 통쾌하다는 듯 박수를 쳤다.

"자알 했어. 사고가 2번은 나 줘야지. 아주 본전을 뽑고도 남았네."


결국 효민이는 도로 주행도 2번째에 합격했다.

"합격이야!"

"효민아, 봐. 넌 5할은 되는 거야.


4번 중에 2번은 합격하잖아.
5할 타자는 메이저리그에도 없어. 잘했어."


아주 학원 거덜나겠네.

나보다 늘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삼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남을 너무 의식하고 실패가 두려운 삼남과,

그 정도는 괜찮다며 항상 실패를 응원하는 남편.

그 중간 어디 즈음에서 아이들은 자랐다.


그래도 지금은, 그런 남편이 든든했다.


'당신은 3할이 아니라

25번 중 1번 실패니, 9할 타자야.

거의 완벽에 가까운 확률이지.

너무 실패를 안 해봐서 충격이 큰 거야.

3할 타자가 삼진 아웃 한번 당했다고,

야구를 때려치진 않아.

중요한 건 당신은 계속

용기있게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는 거야.

지금은 조금 숨고르는 시간이고...

실패가 두려워 아예 도전을 안하는 나보다야 낫지.'


'25년이라는 교직 경력에 24년,

아이들과 교실에서 뿌듯했다.

딱 1번 내가 그린 그림대로 되지 못했다고

주저앉을 것인가?

그런 자신을 용납못하겠다고

경멸하고 있는 게 맞는가?

나라는 사람은 실패가 없어야 한다는 믿음,

그 얼마나 교만한 태도인가?'


삼남은 실패한 적이 없었다.

아니, 실패가 두려워 안전한 선택만 했는지도 모른다.

대학 시험도, 임용 고시도, 하다못해 운전면허 조차

삼남은 할 수 있는 만큼만 안전하게 도전하고 모두 성공했다.


그러다, 삼남에게 처음 커다란 도전이었던 장학사 시험..

3번의 도전과 2번의 1차 합격,

그리고 2번의 2차 좌절...

실패는 뼈아팠다.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실패도 없었겠지.

도전 자체를 수없이 후회했다.

하지만, 그 또한 인생의 수많은 성공과 실패 중 일부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삼남은 계속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는 것.

용기내어 도전했다는 것이 아닐까?


실패가 두려워 관중석에 숨지 않기로,

실패한 나를 용납하고, 실패가 당연함을 인정해 주기로

일곱번 넘어져도 여덟번 다시 일어나기로...

삼남은 용기내어 삶의 타석으로 다시 걸어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브런치북은 30회차가 끝인 걸 29화를 쓰고야 알았네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착한 척 하지마, 오삼남 2권>에서 만나요~

한 주간도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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