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학교에 오면,
가장 먼저 책상 서랍 정리를 하고, 칠판에 써 놓은 주제로 <글똥누기>를 한다.
아침 조회 때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두 줄 정도로 짧게 적는다.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한두줄이라도 쓰게 할까 고민하다 생각해낸
'아침 글똥누기!'
글똥누기 : 글 + 똥누기
(아이들의 생활 속 감정의 찌꺼기나 속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며 감정을 해소하는 글쓰기 활동)
이 글똥누기의 좋은 점은 글을 쓰며 자신의 감정을 쏟아낼 수 있다는 것과 더불어, 서로의 생각을 교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침 조회 시간, 학급 회장이 앞에 나와 잠깐 명상의 시간을 가진 후, 질문한다.
"오늘의 주제인 <가장 행복했던 또는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에 대해 돌아가며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올 여름에 부모님과 여행갔을 때 입니다.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3박 4일동안 함께 한 시간이 기억에 남고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이어서 분단별로 줄줄이 발표를 시작한다. 토킹스틱인 마이크를 돌려가며.
"저는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운동회를 했을 때가 행복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불닭볶음면을 먹을 때가 행복합니다."
" 방에서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며 음악을 들을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며 수다 떨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체육을 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행복했던 혹은 평소 행복한 순간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행복은 단순하다.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고, 감사할 줄 안다.
우리 반 감수성 풍부한 부회장 여학생이 이야기한다.
"저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이렇게 화목한 교실에서 함께하는 이 시간이 참 행복합니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자 너도 나도 맞장구를 친다.
"저도 우리 꿈사랑반에서 함께 했던 올 한해가 정말 행복했습니다. 계속 이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싶어요."
함께 공부할 날도 방학을 제하면 2달이 채 남지 않은 12월의 첫 주.
아이들은 벌써 이별을 떠올리며 함께한 시간을 아쉬워하고 있다.
학기 초에 들려준 시 한편,
김춘수의 <꽃>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몸짓'이 되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아름다운 추억, 함께 했던 4계절...
꽃피는 봄을 지나 뜨거운 여름을 맞으며, 스산한 가을과 차가운 겨울까지..
학교는 항상 네 개의 계절을 지나며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 지구상에, 대한민국에, 그것도 꼭 이 동네에, 같은 초등학교 같은 반으로 만난 우리들.
그 인연의 크기를 생각하면, 한 명도 특별하지 않은 아이들이 없다.
그렇게 특별한 1년이 지나간다.
이 1년이 아이들에게도 특별했을까? 어여쁜 한 페이지의 추억이 됐을까?
나는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될까?
4계절 추억을 떠올리니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빅뱅의 <봄 여름 가을 겨울>(2022.4.)
https://youtu.be/eN5mG_yMDiM?si=ECQLV44GV2r_8StP
앨범 소개 중 일부
빅뱅이 싱글 '꽃 길' 발표 이후 약 4년 만에 신곡 '봄여름가을겨울 (Still Life)'로 돌아왔다.
봄에서 겨울까지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순환을 담은
'봄여름가을겨울'의 도입 가사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개개인의 지나온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빅뱅 멤버들이 가창을 통해 자아내는 청춘에 대한 회상은,
마치 우리 모두가 경험한 청춘에 대하여 말하는 듯
평화롭고 아름답게 흐르며 듣는 이들을 위안한다.
무려 4년 만에 신곡을 발표했던 빅뱅의 이 노래는
가사 하나하나가 지나온 나날들에 대한 회상, 아름다웠던 추억,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뚝뚝 묻어난다.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태양의 단단한 음색으로 도입부는 시작된다.
이듬해 질 녘 꽃 피는 봄 한여름 밤의 꿈
가을 타 겨울 내릴 눈 1년 네 번 또다시 봄
정들었던 내 젊은 날 이제는 안녕
아름답던 우리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미 훌쩍 커서 어른이 된 화자가 소년 시절을 회상하며
부르는 것 같다. 빅뱅도 벌써 30대 중후반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앳된 20대 초반의 1세대 아이돌이었던 그들의 활약상을 본 사람들이라면 세월의 흐름이 묘하게 씁쓸하고 허전하다.
그들의 노래와 함께 한 시절을 나고, 나이를 먹고, 다들 어른이 되었을 팬들에게 가사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Four seasons with no reason.”
비 갠 뒤에 비애(悲哀) 대신 a happy end
비스듬히 씩 비웃듯 칠색 무늬의 무지개
철없이 철 지나 철들지 못해(still)
철부지에 철 그른지 오래, Marchin' 비발디
차이코프스키, 오늘의 사계를 맞이해
마침내, 마치 넷이 못내
지디의 철떡같이 딱딱 맞는 라임이 감탄을 자아낸다.
항상 느끼지만 언어의 마술사, 천재 같다.
달리 연예인의 연예인이 아니다.
작사, 작곡 뿐 아니라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
예술의 세계에 흠뻑 바져 무아지경인 그를 보노라면, 함께 황홀경에 빠져든다.
Boy 저 하늘만 바라보고서 사계절 잘 지내고 있어 Good-bye
떠난 사람 또 나타난 사람
머리 위 저세상
난 떠나 영감의 amazon
지난 밤의 트라우마 다 묻고
목숨 바쳐 달려올 새 출발 하는 왕복선
변할래 전보다는 더욱더
좋은 사람 더욱더
더 나은 사람 더욱더
아침 이슬을 맞고 내 안에 분노 과거에 묻고
For Life
인생은 흘러간다.
떠난 사람, 나타난 사람, 지난 밤의 트라우마, 분노...
그래도, 전보다는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도 엿보인다.
탑의 시크한 저음이 찰떡같이 잘 어울린다.
울었던 웃었던 소년과 소녀가 그리워 나
찬란했던 사랑했던 그 시절만 자꾸 기억나
계절은 날이 갈수록 속절없이 흘러
붉게 물들이고 파랗게 멍들어 가슴을 훑고
언젠가 다시 올 그날 그때를 위하여 (그대를 위하여)
아름다울 우리의 봄 여름 가을 겨울
팬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이전의 시간들, 찬란하고 사랑스러웠던 지난 날들...
교사로 20년 이상을 근무하며 내게도 그런 날들이 많았다.
서로 다투고, 불협화음이 날 땐 속상하고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많이 함께 웃었던 사랑스런 아이들과의 추억들.
계절이 지나고,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
지금은 나를 거쳐간 제자들이 기억조차 못할지라도,
문득 초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붉게 물들고 가슴을 훑는 아련한 추억의 한 조각으로 남아있길...
아이들의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한 때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