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꿈이 뭐야?"
"저의 꿈은 화가입니다!"
"저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저는 아이돌 가수가 되는 게 꿈입니다."
초등학교 공개수업 단골 레퍼토리는 '꿈'에 대한 수업이다.
처음 발령받은 2000년대만 해도, 아이들의 꿈은
화가, 과학자, 아이돌, 연예인, 선생님, 변호사, 의사 등등 다양했다.
유독 기억에 남는 꿈은 초 2 제자의 '슈퍼맨'이다.
되고 싶은 꿈에 '슈퍼맨'과 '대통령'을 적은 아이의
순수하고, 동심 어린 마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꿈에 대해 물으면,
반 정도는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꿈...
듣기만 해도 몽글몽글해지고,
희망으로 벅차오를 것 같은 단어지만,
아이들에게 '꿈'이라는 단어는 부담감으로 다가오나 보다.
꿈이 서글플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노래는
96년도에 발매된 화이트의 '네모의 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올해 아이유의 <꽃갈피 셋> 앨범에서 리메이크되어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지만,
원래 이 노래는 주의환기용 또는 떼창용으로
초등학교에서 근 20년째 히트송이다.
https://youtu.be/r3WS1BOpgk4?si=OMehDMisGX06BvvY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스마트폰 본 뒤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온통 네모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꿈을 꾼다는 건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한다'는 잘난 어른의 말과 같은 모순이 아닐까?
네모가 둥글어지는 건 순리에 어긋나고, 어색한 일이니
그저 잡지에 그려진 이달의 운수에나 기뻐하라는
꿈조차 꾸기 힘든 이들의 자조 섞인 서글픈 현실을 꼬집는다.
밝고 즐거운 리듬으로 손율동까지 곁들여 부르지만,
가사를 곱씹을수록 아픈 데가 있다.
주윌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
어른들이 강요하는 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항하는 노래도 있다.
악동뮤지션의 <후라이의 꿈>
이 노래도 초등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
밝고 경쾌하고 리듬감 있는 노래, 중독성 있는 후렴구.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 규칙을 충족한다.
고개를 까딱거리며 신나게 따라 부르는 아이들,
그 뒤에 숨겨진 심오한 가사.
https://youtu.be/3kGAlp_PNUg?si=7K4UV7DJ_Zy6qlZT
저 거위도 벽을 넘어 하늘을 날을 거라고
달팽이도 넓고 거친 바다 끝에 꿈을 둔다고
나도 꾸물꾸물 말고 꿈을 찾으래
어서 남의 꿈을 빌려 꾸기라도 해
내게 강요하지 말아요 이건 내 길이 아닌걸
내밀지 말아요 너의 구겨진 꿈을
가사는 인순이의 <거위의 꿈>과 이적의 <달팽이> 가사로 시작한다.
거위도, 달팽이도 꿈을 꾸는데,
어서 꿈을 꾸라고 재촉하는 소리들.
그것을 거부하는 단호한 목소리,
내게 강요하지 마. 너의 구겨진 꿈을 내밀지 마.
천재 뮤지션 이찬혁도
외부의 소리들에서 자유할 순 없었나 보다.
난 차라리 꽉 눌러붙을래
날 재촉한다면
따뜻한 밥 위에 누워 자는
계란 fry fry 같이 나른하게
반항은 단호함으로 바뀐다.
누구든 꿈을 꿔야 한다는 소리 강요하지 마.
계란 후라이처럼 그냥 퍼져 버릴 거야.
그냥 흘러 가게 놔둘 거야.
- 거의 선언하고 있다.
꼭 꿈이 있어야 돼? 꿈이 없는 건 죄가 아니야.
다음 가사는 더 재밌다.
고래도 사랑을 찾아 파도를 가를 거라고(윤도현_흰 긴 수염 고래)
하다못해 네모도 꿈을 꾸는데(화이트_네모의 꿈)
아무도 꿈이 없는 자에겐 기회를 주지 않아
하긴 무슨 기회가 어울릴지도 모를 거야
무시 말아 줘요 하고 싶은 게 없는걸
왜 그렇게 봐 난 죄지은 게 아닌데
급기야 자꾸 재촉하면 그냥 꽉 눌러붙어버릴거라고 말한다.
난 차라리 꽉 눌러붙을래 날 재촉한다면
고민 하나 없이 퍼져 있는
계란 fry fry 같이 나른하게
아무것 하지 않아도 존재감 있고 모두가 좋아하는
계란 후라이.
문득 나도 계란 후라이같이 퍼져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이루기 위해
외부의 시선에 나를 맞추고,
끊임없이 재촉당해 왔던 나를
조금은 퍼지게 놔줘도 괜찮지 않을까?
이런 나도 누군가 좋아해 줄 사람이 있지 않을까?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 좀 내려놓고 싶다.
"선생님, 꼭 꿈이 있어야 해요?"
"저는 아직 꿈이 없어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뒷 배경을 꾸미기 위해 '꿈나무'를 만들 때, 꼭 나오는 질문들.
이럴 때면, 참 난감하다.
"꿈은 계속 바뀌는 데 어떡해요?"
이건 차라리 괜찮다.
하고 싶은 게 많은 거니까 무언가를 계속 시도하고 싶은 의욕왕이니까.
"꿈이 많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야. 다 적을 순 없으니
일단 오늘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적으면 어떨까?"
하지만, 요즘 심심찮게
'돈 많은 백수' '건물주' '슈퍼개미 주식투자자'와 같은
꿈을 마주할 때가 있다.
이럴 때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퍽 난감하다.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초등생들에게
선생님도 원하는 꿈이라고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사람은 '자아실현의 욕구'가 가장 상위 욕구이니,
자신이 잘하는 걸 찾아보라고 교과서적으로 말해야 하나?
교사 생활 25년 차에도 여전히 인생을 모르니,
이게 맞는 길이라고 확신에 차서 얘기하기 어렵다.
원하는 것들을 유보하며 살아온 내 입장에서는
뭐라 해줄 조언이 없다.
학원과 학습에 내몰린 아이들이
더 빨리 꿈을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요당한 꿈에 지친 아이들이
소리 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좀 가만 놔둬요. 확 퍼져버리기 전에.
퍼져 버린 채로도 뭐 어때요?
이것도 내 모습인 걸.
꼭 병아리가 돼야 하나요?
꼭 닭이 돼야 해요?
후라이가 되면 안 되나요?
아이들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