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늘 이런 식일까

착한 사람이 되기로 한 어린 나

by 윤담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착한 아이가 되기로 마음 먹었고, 노력했다.

울지 않고, 떼쓰지 않고, 부모 말을 잘 듣는 아이.

그래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그래야 혼나지 않는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면 그게 시작이었다.

나보다 타인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습관.

‘착한 아이’라는 말 뒤엔,

내 감정을 어거지로 삼킨 날들이 조용히 쌓여 있었다.


거절이 어려운 사람의 마음

“싫어요”, “안할래‘ 라는 말을 삼키는 데 익숙했다.

거절은 곧 갈등이고, 갈등은 곧 나를 미워하는 일일까 봐.

그래서 늘 “괜찮아요”, “그래”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볼까 신경 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르게 됐다.

누군가 정해주지 않으면 길을 잃었다.

어쩌면 나는 거절이 두려운 게 아니라,

외면당할까봐 무서웠던 걸지도 모른다.

상처받을까봐, 나를 먼저 포기했다

누군가 다가오면 조심했고,

선을 넘으면 이해하려고 애썼고,

상처를 주는 말에도 괜찮은 척했다.

그렇게 나는 매번 나를 먼저 포기하는 쪽이 되었다.

어느 순간, 사람들도 내가 먼저 물러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왜냐면, 나도 그게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었으니까.

기대에 부응하려다 자기 자신을 잃은 사람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

나는 늘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의 기대는

어느새 내가 따라야 할 기준이 되어 있었고,

나는 그 기대 속에서

점점 “진짜 나”와 멀어지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뭔지,

내가 힘든 건 맞는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감정을 눌러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날들

어떤 날은,

감정을 꺼내는 게 사치처럼 느껴졌다.

참는 게 살아남는 길이었고,

참아야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울지 않았고,

화를 내는 대신 침묵했고,

도움이 필요해도 괜찮은 척했다.

그렇게 나는, 감정을 억누르는 법을 배웠다.

나는 왜 늘 같은 상처를 반복할까

비슷한 상황,

비슷한 감정,

비슷한 후회.

왜 나는 늘 같은 방식으로 상처받는 걸까.

왜 나는 매번 나를 먼저 내어주는 걸까.

그런데 문득,

이게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이건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힌 생존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방식이 더는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도 안다.


진짜 나로 살아남기 위해

착하게 살아남으려 했던 나는

결국 나를 잃었다.

이제는 착한 사람이 되는 연습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연습이 필요하다.

타인의 기대보다,

내 감정의 편에 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제는 진짜 나로 살아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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