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해하는 첫걸음

심리학적으로 나를 다시 바라보다

by 윤담

나의 방어기제는 나를 어떻게 지켜왔을까

나는 늘 감정을 참아왔고,

상처받기 전에 먼저 포기했고,

웃으면서 내 마음을 감추고 속였다.


그건 나를 약한 사람으로 만들었던 게 아니라,

그 순간을 버티기 위한 내 방식이었다.

“난 왜 이렇게 굴까”라고 자책했던 많은 순간들이

사실은, 나를 지키기 위한 심리적 방어였던 걸 뒤늦게 알았다.

우리가 말하는 ‘문제 행동’도,

결국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나를 속이는 법부터 배웠던 것이다.

억눌린 감정은 다른 방식으로 튀어나온다.

슬픔을 참으면, 짜증이 됐고

화를 못 내면 몸이 아팠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감정은 그걸 모른 척하지 않았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말하지 못한 방식으로 흘러나온다.


감정을 억누르면 없어진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다른 이름으로 변해서

나를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참았던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나를 아프게 하는 방식으로 돌아온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타인’이 아니라 ‘나의 반응’

“저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라고 말했지만,

정작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그 말에 내가 반응하는 방식이었다.


감정을 키운 것도,

상처를 반복한 것도

결국은 내가 어떤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느냐의 문제였다.


감정은 외부에서 시작되지만,

고통은 내 해석에서 만들어졌다.


상처는 외부가 만든 감정이지만,

고통은 내가 만든 반복이었다.

감정은 다스리는 게 아니라 알아차리는 것

감정을 억제하려고 했고,

이겨내보려고 했고,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감정은 조절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의 언어였다.

슬플 땐 슬프다고 말하고

외로울 땐 외롭다고 느끼는 것,

그게 오히려 나를 무너지지 않게 만든다.

감정을 억누를수록

오히려 감정에게 끌려다니게 된다.

감정은 다스리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감정을 부정할수록,

감정은 더 큰 얼굴로 나를 부수러 온다.


자존감은 고치거나 채우는 게 아니라 ‘돌아보는 것’

나는 자존감이 낮다고 자책했고

그걸 끌어올리기 위해

성과를 내고,

인정을 받으려 했고,

관계 안에서 내 존재 가치를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자존감은 채우는 게 아니라,

돌아보는 것이다.


나는 왜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였을까.

나는 왜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그렇게도 낯설고 어색했을까.


자존감은 애써 높이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상처를 알아채는 데서 시작된다.

자존감은 스펙이 아니라 생존이다.

나를 사랑하려고 애쓰기 전에,

왜 그렇게까지 외로웠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불완전한 나를 감싸 안는 연습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방식으로 살아남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실수했고, 상처도 줬고, 나를 잃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불완전했던 나조차

감싸 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은 고쳐야 할 게 아니라,

이해받아야 할 존재니까.

나는 고장 난 사람이 아니라,

너무 오래 아팠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나를 다시 안아주는 연습을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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