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족한 사람이 나예요
전문상담교사에겐 어떤 능력이 중요할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경청”? 감정을 깊이 있게 이해해 주는 “공감”? 흔히들 이 두 가지를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경청과 공감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기를 수 있다. 나 또한 이 두 가지를 대학에서 배우며 점차 늘어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배워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다. 바로 관계를 맺는 능력, 즉 “사회성”이다.
사회성을 좀 더 정확하게 정의 내리자면 ‘한 개인이 사회적 상황에서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며, 의사소통과 협동을 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종합적인 능력’을 말한다. 난, 사회성이 부족하다. 돌이켜보면 친구들과 갈등이 일어나도 잘 해결하지 못했다. 서로 멀어져 갔다. 그 일이 반복되면서 친구들이 점차 떠나갔다. 친구가 없으니 대화도 줄고, 입을 닫으니 사회성도 함께 사라져 갔다.
지금 와서 보면 위험한 신호지만, 친구가 없는 건 나름 살만했다. 성향도 집순이고, 성격도 사람에게 별 관심 없다는 INTJ다. 살아가기만 하면 별문제 없는 셈이었다. 진학도, 직업도, 사람을 덜 만나는 방향으로만 택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인생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나. 고등학교 때의 내 선택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난 대학을 상담심리학과를 갔다. 상담이라는 직업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별 고민 없이 진학했고, 졸업 첫해에 바로 후회했다.
상담이……너무 어려웠다.
사람이 어려운데 그 마음마저 이해하라고? 게다가 관계도 맺고, 모범도 되어야 한다고? 마치 갓 면허를 딴 사람에게 서울에서 부산까지 운전하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크나큰 두려움이 몰려왔다. 생각만 해도 막막하고, 걱정에 밤샐 정도였다. 내가 상담하는 게 오히려 시간 낭비가, 아니면 독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과거의 내가 노력했다면 달랐을까? 그랬다면 사람을 대하는 게 자연스러웠을까? 친구가 언제부터 없었던 걸까. 되짚어 보면 꽤 먼 과거까지 내려갔다.
먼저 고등학교 때는, 모두가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만 해서 괜찮았다. 친구가 없어서 괴로운 것보다, 공부 자체가 괴로웠다. 다들 어느 정도 커서 그런지, 어물쩍거려도 이해해 줬다. 고등학교 때 가장 기억나는 것은 나보고 기계 같은 리액션이라고 웃는 친구들의 모습이었다. 난 차가운 무표정에,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지금 떠올려봐도 따로 노는 모습이 꽤 우스꽝스럽긴 하다. 물론 그때의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잘 몰랐다. 적당히 어울리는 범위에 내가 들어가 있다고 착각할 뿐이었다. 왜냐면, 중학교 땐 더 심각했으니까.
중학생의 나에게 말을 거는 친구가 없었다. 스스로는 자발적 왕따라고 생각했다. 나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는 “얼음 공주”였다. 항상 무표정에, 친구들과는 척지고, 차가운 말투를 가진 모습에 생긴 별명이었다. 공공연하게 불리진 않았지만, 알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여러분 반에는 이렇게 얼음 공주 같은 사람이 있나요?”
그 말에,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감각이 느껴졌다. 곁눈질로 쳐다보는 감각, 지금도 그 순간 서늘한 공기가 생생하다. 당황한 선생님은 재빨리 화제를 바꿨고, 반 아이들은 그 흐름을 같이 탔다. 단 한 명, 나를 제외하고. 그 외에도 중학교 때는 나의 암흑기였다. 입학할 때부터 내 사회성은 거의 바닥이었으니, 어려울 만했다. 사회성이 0까지 떨어진 이유는 초등학교 때 있었다.
초등학교 때 나는 나름 잘 지냈다. 4학년 때까진 단짝도 있고, 처음 본 다른 학교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전화번호도 먼저 물어보며 친해졌었다. 내가 다가가지 않아도 나를 먼저 찾아주는 고마운 친구들도 많았다. 하지만 4학년 때 단짝이 서울로 전학 가고, 어쩐지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친구들이 줄어들었다. 그 공백을 견디지 못했던 나는, 그저 웅크려버렸다. 4학년 때부터 졸업 전까지, 자발적으로 내가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거의 0에 가까웠다. 흐릿한 기억이지만,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사회성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학교에 많은 시간을 보내며 관계의 중심이 가족에서 또래로 확장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항상 관심을 받던 주인공에서, 다양한 주인공들과 관계를 맺으며 서로가 조연이 되어 조화를 갖추게 된다. 관계가 확장되며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 과정을 거쳐 사회성은 서서히 자라난다. 어린 나는 그 과정을 놓쳐버렸다. 친구는 사라지고, 입은 닫고, 관계는 끊겼다. 사회성은 그대로 멈췄다. 작은 아이의 고립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초등학교에서 전문상담교사로 일한 지 벌써 4년째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이라 생각했지만, “인간은 계속 성장한다.”라는 말처럼, 나 또한 성장했다. 아직 부족하고, 오히려 아이들에게 배울 때도 많지만……나는 지금도, 전문상담교사로서 성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