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시골 학교 상담교사의 하루

작지만, 확실한 아이들의 울타리

by 잔디

하루의 시작은 작은 곰 인형 열쇠고리와 함께한다. Wee 클래스의 잠긴 문을 열면 계절이 고스란히 스며든다. 여름이면 눅눅한 더위가, 겨울이면 코끝 시린 공기와 함께 포근한 디퓨저 향이 나를 반긴다.


책상엔 어제 펼쳐놓은 수첩이 날 기다린다. 한 장 한 장에 나의 하루가 담겨있다. 페이지를 넘기고 오늘의 할 일을 적는다. 컴퓨터를 켜놓은 채 냉장고에서 단백질 두유를 꺼내 마신다. 짧지만 달콤한 여유를 마시면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아이들은 중간놀이(10:30~11:00)와 점심시간(12:30~1:30)에 주로 온다. 상담실을 늘 열어두기에, 특별한 고민이 없어도 아지트처럼 자주 드나든다. 그때가 되면 잔잔하던 공간은 순식간에 북적거린다. 보드게임 소리, 장난스러운 웃음, 작은 다툼까지 피어난다. 활기와 생동감의 소리가 퍼진다. 그러다 아이들이 떠나면 다시 조용해진다. 소리는 잦아들고, 남는 건 어질러진 흔적뿐이다.


떠나기 전 항상 아이들이 정리할 시간을 준다. 하지만 고사리 같은 손은 서툴다. 나에겐 작은 보물 찾기처럼 느껴진다. 보드게임 카드, 흩어진 지우개 가루, 팔찌를 만들다 떨어진 반짝이는 비즈들. 하나씩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상에 묻은 사인펜의 흔적을 지우고 의자를 정돈하면, 상담실은 다시 말끔해진다.

이곳은 이름이 다양하다. Wee 클래스, 상담실…. 보통은 상담실이라 부른다. 아이들은 주로 친구 관계 문제로 찾아온다. 나 역시 학창 시절 서툴렀기에 뚜렷한 해답을 주지 못할 때가 많다. 다만 끝까지 들어주고 마음을 이해해 주면, 아이들은 무거운 짐을 내린 듯, 얼굴이 환해진다.


상담실은 아이들의 재잘거림 외에도 다른 소리를 낸다. 잔잔히 울리는 싱잉볼, 작게 속삭이는 비밀의 숨결. 요즘 싱잉볼 명상을 즐긴다. 혼자 있을 때 싱잉볼을 울리면, 마음이 고요하게 내려앉는다. 개인 상담을 할 땐, 아이의 목소리에 맞춰 나도 크기를 낮춘다. 그렇게 작은 비밀을 우리끼리 속삭이게 된다.


교실은 생각보다 방음이 되지 않는다. 긴장과 불안이 큰 아이들은 자기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까 걱정한다. 창문 너머에서 들리는 다른 아이들의 웃음소리에도 쉽게 흔들린다. 그럴 땐 문을 잠그고,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한다.


“괜찮아. 이 이야기는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시선은 바닥에 꽂혀 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근데… 혹시 밖에서 들으면 어떡해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럴 일 없을 거야. 혹시라도 들리면, 내가 지켜줄게.”


그제야 아이는 크게 한숨 들이쉰다. 목소리는 여전히 소곤소곤했지만,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 내려앉는다. 상담이 끝날 무렵, 불안의 그림자 속에서 안도감이 배어 나오는 표정이 드러난다. 나는 그 표정을 만날 때마다, 이 일이 주는 가장 큰 보람을 다시 확인한다.


상담을 끝내고 여운에 잠길 틈 없이 바로 기록한다. 아이의 표정, 감정, 행동, 내용과 유의미한 반응을 놓치지 않고 기록한다. 시간이 지나면 중요한 단서는 잊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순간이 바로 골든 타임이다.

내 키보드 소리가 멈출 때, 고요해진다. 상담실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의 공기가 달라진다. 회의가 없는 이상 모두 각자 자리에서 묵묵히 일한다. 아이들도 하교하고, 서로 얼굴을 맞댄 이들이 줄어든다.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사라진 복도를 보면, 낯설게 쓸쓸해진다.


딸각, 딸각, 철컥. 에어컨이나 히터를 끄고, 불을 내린다. 열쇠를 꺼내고 문고리를 돌린다. 어두워진 상담실은 방금의 생기를 잃은 채 조용히 서 있다. 내일 또 올게, 작은 혼잣말과 함께 곰 인형 열쇠고리를 쥔다. 노을빛 복도를 걸으며 오늘을 마음에 담는다. 작은 상담실이지만, 이곳은 아이들의 마음을 지켜주는 울타리다.


그렇게, 상담실의 하루는 고요히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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