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족한 내가 상담교사가 된 이유

오고 싶지 않던 상담실에서, 오고 싶은 공간으로

by 잔디

내가 대학생일 때, 친구에게 들었던 말 하나가 충격적이었다.

“난 상담 선생님이 너무 좋았어. 내 고민을 잘 들어주셨거든. 그래서 나도 상담교사가 되고 싶더라.”


얼핏 들으면 참 따뜻한 계기다. 하지만 나는 저 말을 듣고 몰래 쓴웃음 지었다. 내게 상담 선생님은 좋은 기억이 아닌, 상처의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나는 늘 혼자 밥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본 어떤 선생님이 상담실로 나를 데려갔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시작된 상담이었다. 그 끝은 어쩌면 예견되어 있던 걸지도 모른다. 상담을 강요받은 사춘기 소녀는, 대충 방문만 들락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담실에서 한 학년 위 언니들을 만났다. 어리둥절해 있던 나에게 언니들은 산책을 하자고 제안했다. 별생각 없이 따라나갔고, 돌아오기 전 복도에서 언니가 어색하게 말했다.


“잔디아, 친구들 사귀고 싶지 않아? 상담 한 번 제대로 받아봐.”


한 걸음 너머 거울에 햇빛이 반짝이며 우리가 비쳤다. 동태 같은 내 눈빛과, 동정 어린 언니의 눈빛이 엇갈렸다. 그날따라 거울이 차가워서, 서리가 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너무 추워서 내 마음이 얼어붙었나 싶었으니까. 그 순간 알아차렸다. 그녀 또한 자의로 나와 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상담 선생님의 심부름이었다. 내가 그렇게 확신한 이유는, 그 말을 하고부턴 나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아서다. 그렇게 상담 선생님에 대한 첫 번째 신뢰를 잃었었다.


결정적인 건 작은 심부름이었다. 상담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께 ‘몽셀통통’을 받아오라 했다. 선생님을 마주하고 입을 연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흐릿한 기억 속에 입술을 달싹이며, 우물거렸다. 우물거림에 목소리만이 아닌, 내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너무 작아져 없어지기 전에 상담선생님이 오셨고, 그 눈엔 실망이 아려있었다.


그 눈빛은 사춘기 소녀의 여린 마음을 닫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1학기와 여름방학까지 상담을 했지만, 결국 우리의 기싸움은 나의 승리로 끝났다. 상처만 남은 채, 서로가 너덜너덜하게.



지금은 내가 상담실을 지키는 그 사람이 되었다. 마음을 닫았던 사춘기 소녀는, 누군가의 마음을 열려고 애쓰는 어른이 되었다. 처음엔 망설였다. 상담교사라는 직업을 내가 해도 괜찮을까? 말도 잘못하고, 내 감정도 아직 모르겠는데, 내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게 시작됐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겠지, 뭐. 한 번 해보고 아니면 다른 일 찾아보자!”


처음엔 자신감을 위해 저렇게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그 뒤부턴 부족하다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부족해도, 왜 내가 하고 싶은 걸까? 내가 이 일에 뛰어드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고민 끝에 다다른 결론은 이거였다.


난 부족하기에 안다. 나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지. 그래서 더 노력하고 늦더라도 조금씩 나아간다. 결코 뒤로 가지는 않게끔. 어중간하게 잘하는 것보단, 부족한 내 모습이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그래서 난, 상담교사를 한다. 한때 나처럼 상담실 문을 닫았던 아이가, 그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도록. 상담실이 상처의 공간이 아니라 숨 쉬는 휴식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을 담아 아침마다 굳게 잠겨있는 상담실 문을 연다. 그 문이, 또 다른 아이의 마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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