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일 때, 내 이야기는 희망이 된다
나는 이야기 치료를 좋아한다. 이야기치료는 문제 가득한 삶에서 찰나의 희망을 발견하고 그를 바탕으로 삶의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간다. 희망의 실오라기를 걸치고 삶을 되돌아볼 때, 삶의 주인인 내담자가 직접 재저작해서 좋다. 특히 다시 쓰인 이야기는 반드시 문제투성이 삶에서 나오기에 더 희망적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직접 상담에 적용해 본 적이 없다. 그럴 때마다 내 안의 목소리가 속삭인다. 너도 그렇게 바꾸고 싶잖아. 네 삶을 다시 그려보고 싶잖아.
돌이켜보면 내 삶은 눈물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른다. 울며 잠에서 깬 적도 많다. 그럴 때마다, 왜 우는지도 몰랐다. 그저 ‘난 눈물이 많구나’ 하고 넘길 뿐이었다.
중학생 때,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며 스친 생각이 있었다. 멍하게 퀴퀴한 검은 연기를 마시며 나도 그것처럼 되고 싶었다. 버스가 뿜는 매연에 사람들이 파도처럼 물러섰다. 그러곤 버스가 떠나갔을 때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정류장 앞자리를 차지했다.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지만,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은 삶. 그런 삶이 고팠다. 그리고 내 소원이, 눈덩이처럼 조금씩 내 삶을 잠식해 갔다.
그 눈덩이의 종착점은 대학생 때였다. 상황에 맞춰 감정을 가지는 게 어려워졌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주변 눈치를 보게 됐다. 웃음소리가 커질 땐 입꼬리를 올리고, 안타까워할 땐 눈썹을 쳐지게 했다. 적응하기 위한 내 몸짓은 우스꽝스러웠다. 스스로가 이상한 가면을 쓴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사회불안이 커졌다. 항상 눈치를 보며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은, 불안을 증폭시키기 충분했다. 특히 입시 준비만 해도 됐던 고등학교 때와 다르게, 갑자기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 되자 소용돌이가 커졌다. 불안, 걱정, 우울은 그때부터 내 곁에 지내게 되었다.
슬픔이 파도라면, 우울은 바다다. 파도는 치고 사라지지만, 바다는 끝없이 이어진다. 감정의 유지 기간은 90초다. 그렇기에 감정인 슬픔은 지나가지만, 기분인 우울은 다르다. 깊이 빠질수록, 심해에 갇히고 만다. 그렇다고 수영 쳐서 도망친다면, 힘이 빠져 가라앉는다. 적응하기 위해선, 숨을 참는 방법과 바다의 흐름 속에서 눈 뜨는 법을 익혀야 한다.
첫 번째 시도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었다. 감정을 감정 그대로 알지 못한다면, 행동으로 먼저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감정을 느끼면 된다. 슬픔을 느끼고 싶다면, 표정을 슬프게 만들고 슬픈 감정을 지닌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행동으로 느끼는 감정의 폭과 깊이가 넓어졌다.
두 번째 시도는 상담받는 것이었다. 교수님들은 이렇게 말했다.
“상담을 할 사람은, 성공적인 상담을 한 번이라도 겪어봐야 한다.”
그 말을 듣고 원치 않지만 시도해 보았다. 중학교 때의 상담 경험이 좋지 않아서 마음먹기 쉽지 않았다. 5번의 시도 끝에, 한두 번 나와 맞는 상담사를 만났다. 그때 깨달아 갔다.
내 안의 있던 심해가……. 조금씩 밝게 비치기 시작했다.
새벽 두 시, 천장을 바라보는 눈은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365일 중 300일 이상을 울며 지냈던 날이 무색할 만큼, 눈이 말똥 했다. 처음으로, 맑은 정신으로 새벽을 보냈다. 나머지 60일 정도는 너무 지쳐 쓰러진 날들이었으니, 그 순간은 더욱 묘했다. 마음이 한결 가볍고 따스했다. 나를 처음으로 되돌아봤다. 나는 그동안 너무 힘들었던 거구나.
눈물을 흘리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호르몬이 몸 밖으로 배출되어 기분이 나아진다. 슬픔과 긴장이 완화된다. 그제야 내 눈물의 의미를 깨달았다. 눈물은 나를 지키기 위한 몸의 신호였다.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될 때, 나를 지켜온 눈물의 너머를 보게 되었다. 내 우울이, 그저 나를 심해로 끌고 간 것이 아니었구나, 나를 지키기 위해 심해가 되었던 거구나. 내 삶의 동반자가 되어왔던 거구나.
이제는 내 감정을 잘 느낄 수 있다. 행동으로, 인지로 매개하다가 이젠 감정을 그대로 느끼게 되었다. 나의 작은 발자국들이, 파도에 쓸려가지 않고, 꿋꿋이 남아있었다. 더 이상 우울감에 잠식되지 않게 되었다. 자유롭게 헤엄치며, 심해를 바라볼 수 있는 내가 되었다.
돌아보면 이 모든 과정은 내 삶을 다시 써 내려간 시간이었다. 우울을 동반자로 다시 써낸 이야기는 곧 새로운 의미가 된 삶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 치료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