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빌런이 되어도, 여전히 좋은 사람

관계의 나침반을 나에게로 돌리자

by 잔디

나는 최근에 차를 사서 드라이브를 즐긴다. 노래를 들으며 화창한 풍경을 볼 때 기분이 고양된다. 그러다 스텔라 장의 <빌런>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문득 처음 학교로 간 날이 떠올랐다.




학교 첫 출근날, 긴장됐다. 첫 직장은 학교가 아닌 위 센터였는데 좋진 않았다. 사회 초년생에다가 경험도 적어 사람들과 부딪히며 실수가 잦았다. 열심히 하는데 잘되지 않을 때, 나를 지키고 싶어서 잘하는 척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이번 학교에서는 다르길 바랐다. 척이 아닌, 정말 잘하고 싶었다.


잘하고 싶어 할수록, 잘 되기 어렵다. 기대만큼 부응하면 좋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커진다. 학교에서는 상담 전문가가 나밖에 없어서 책임감이 무거워졌다. 동시에, 잘하는 척을 더 하게 되었다. 그 오만함은 실력에서 들통나고, 동료 교사들의 눈빛에서 실망을 읽었다. 실제로 그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른다. 그저 실망이 아려오는 내 눈이, 그들에게 비쳤을 뿐이었다.


첫 직장에서도 어려웠던 두 가지가 이번에도 반복됐다. 하나는 내 능력의 부족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관계의 어려움이었다. 첫 직장인 위 센터에서는, 한 공간에 여러 명이 있었다. 내가 나서서 다가가지 않아도 대화를 쉽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는 달랐다. 학교는 위 클래스에 나 혼자만 있고, 내가 실에서 나가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러니 나에게 관계에서의 적극성이 요구됐다.


혼자 있을 땐 마음이 편하다. 여유롭고, 평온하고, 차분하다. 하지만 관계 속에서는 잔잔한 마음이 크게 일렁인다. 교무실에서 간식을 나누며 수다를 떨 때, 30분 동안 말없이 대화를 따라가기도 벅찼다. 열 명이 던지는 화제와 목소리를 쫓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나’라는 존재를 드러내고 싶었다. 언젠가 내가 없었던 것처럼 여겨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시 위 클래스로 돌아오면, 남는 건 지침뿐이었다.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돌이켜 보면 잘 보이고 싶어서였다. 존재감을 증명하고, 그들과의 동질감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기대가, 나를 더 위축시켰다. 그들의 시선에 내가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그게 나를 “타인 지향적” 사람으로 만들었다.


데이비드 리스먼은 현대인의 사회적 성격을 3가지로 나눴다.

1. 전통적인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전통 지향적 성격)

2.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내부 지향적 성격)

3. 타인의 시선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타인 지향적 성격)


나는 이 중 세 번째였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적인 건 아니다. 혼자 있을 땐 내부 지향적인 내가 되니까. 사회적 성격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내부 지향적인 나를 관계 속에서 꺼내오면 된다.


관계의 나침반을 다시 나에게로 돌리려면 기대를 버려야 한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욕심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기준을 타인에게 넘기면 나만 힘들어진다. 누구는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할 수 있다. 나 또한 그런 것처럼.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유 없이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이유를 만들어주면 된다고. 하지만 이 말은 나의 성장을 돕지 못한다. 결국 그것도 기준점이 타인에게 있으니, 스트레스를 덜기 위한 임시방편이다. 난 좀 더 근본을 보고자 한다.


스텔라 장의 <빌런>이라는 노래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영웅이면서 빌런이 될 수 있다고. 당신이 좋게 보는 나도 빌런이고, 당신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구분 지어 놓고 사는 건 어리석다고 말한다. 난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빌런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다.”


타인 지향적인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타인에게서 찾는다. 그래서 눈치를 보고 관계에서 늘 불편하다. 그렇지만 뭐 어떤가. 상대방이 나를 비난하든, 거절하든, 난 여전히 좋은 사람이다.


상담에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고 스스로 바뀌고자 한다면, 반드시 성장한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왜냐면 난 아직 부족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 난 노력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말하고 싶다.


당신도, 여전히 좋은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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