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상담의 0단계

상담자라면, 반드시 갖춰야 한다

by 잔디

상담의 시작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요?”가 아니다. 그보다 먼저 “당신은 이 공간이 편안한가요?”로 시작된다. 익숙지 않은 공간, 처음 만난 사람, 꺼내기 힘든 이야기. 그 모든 걸 품을 수 있는 안전함. 상담은 그걸 먼저 만들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된다.


상담의 1단계는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것이다. 라포란, 내담자*가 친밀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의 다리를 놓는 일이다. 그 다리가 놓여야 비로소 말을 꺼낼 수 있고, 마음이 열리게 된다. 내담자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도착하는 목적지가 있다. 내담자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 그동안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마음, 그 마음이 시작되는 곳에서 상담 목표가 만들어진다. 왜 그동안 말하지 못했을까? 그 물음의 끝에 있는 고민이 상담의 방향이 된다.

*내담자: 상담을 받는 사람


나는 그 목표가 내담자의 내면에 기반한 욕구(WANT)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이는 현실치료에서 기반한 개념으로, 평생에 거쳐 만들어지는 욕구다. WANT는 말로 정확히 표현되지 않는다. 내담자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민과 말의 틈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는, 그 미세한 흔들림에 귀를 기울인다.


가령, 어릴 때부터 사랑을 못 받아온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는 사랑받지 못했기에, 사랑을 주는 법을 모른다. 마치 선물을 받을 때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 줄 때의 기쁨을 알 수 있듯이. 사랑을 주고받을 줄 모르니 인간관계가 어렵다. 가까워지다가도, 다시 멀어진다. 사람 대하는 게 어색하고, 늘 불편해서 혼자이기 일쑤다. 그래서 친구도 별로 없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그는 깨닫게 된다. 자신의 인간관계에 어느 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그 뒤엔 3가지 선택지가 놓이게 된다.


1. 인간관계를 잘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기

2. 자기 모습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3. 주변 사람과 자신의 차이점으로 괴로워하기


3번은 너무 괴롭고, 2번은 현실이 바꾸지 않는다. 1번은 변화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이 괴롭다. 나를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이상만 좇는다면, 혼란스러움에 빠질 뿐이니. 상담의 그 세 갈래 선택지 속,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진짜 욕구에 귀 기울인다.


“나도 사랑받고 싶어.”


사랑받고 싶어,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웃으며 주고 싶어. 그렇다고 내 지금의 모습을 버릴 순 없어.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내 모습도 존중받고 싶어. 주변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고통스러워지고 싶진 않아.


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그리고 연민을 느끼되 동정은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상담의 0단계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애정을 갖기 위해선, 나를 먼저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내면에 귀 기울여야지만, 상대의 마음도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론은 배우면 되고, 상담은 연습하면 되지만, 마음을 갖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그 마음이, 나한테 없는 거 같지? 상담할 정도로 충분치 않은 것 같고.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건, 잘하고 있다는 뜻이야. 진짜 없는 사람은 그런 고민조차 안 하니까.”


내 마음이 부족한 건 아닐까. 내 진심이 닿지 않는 건 아닐까. 그런 염려마저, 사실은 내담자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저 예시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말할 수 있다.


사실은 사랑받고 싶은 거잖아, 미움받고 싶지 않잖아, 하고.

이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때까지 계속 되내일 것이다. 부끄럽지만 솔직한 내 마음이 당신에게도 읽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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