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할 때, 제자리에 서 있는 나의 두려움.
세상은 늘 나보다 빠르다.
새로운 유행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속도는
내가 마음을 정리하기도 전에 이미 다음 계절로 넘어간다.
사람들은 ‘지금’을 말한다.
지금 들어야 할 노래,
지금 사야 할 옷,
지금 가야 할 장소.
그렇게 ‘지금’이라는 단어에
모두가 매달려 있다.
놓치면 안 된다고, 뒤처지면 안 된다고 말하듯이.
나는 그 속도를 맞추지 못한다.
남들이 열광하는 노래를 들으면
처음엔 잘 모르겠다가도,
며칠 뒤 문득 그 멜로디가 마음에 남는다.
그러면 세상은 이미 다른 노래를 듣고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마치 혼자 오래된 계절에 남겨진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느림이 점점 좋아졌다.
누군가의 유행이 지나간 자리에
아직 남아 있는 따뜻함을 발견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미 잊은 소품이나 말투,
그 안에는 어쩐지 시간의 손길이 남아 있다.
유행이 아닌 ‘흔적’이 되어버린 무언가,
그걸 알아볼 수 있을 때 나는 조금 안심이 된다.
세상의 속도는 늘 앞질러 가지만,
마음의 속도는 그렇지 않다.
어떤 감정은 느리게 도착하고,
어떤 사랑은 늦게 피어난다.
그 느림을 탓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의 온기는 언제나 천천히 스며드는 법이니까.
유행의 속도는 사람을 바쁘게 하지만,
나의 속도는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
남들이 달려가고 있을 때
잠시 멈춰 서서 바람의 냄새를 맡고,
조용히 내 발걸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그 순간이야말로 내 삶이 나의 것이 되는 시간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따라가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내 안에서 피어나는 느린 리듬에 귀 기울인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것을 찾기 위해서.
유행의 속도는 언젠가 잊히겠지만,
나의 속도는 나와 함께 늙어간다.
그리고 그 느린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지금’을 진짜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