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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처진다는 말의 무게

부제- 트렌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작고 조용한 용기.

by YEON WOO

요즘 따라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요즘 다들 그거 하던데.”

“아직 안 해봤어?”

“이제 그런 건 좀 올드하지 않나?”

그 말들은 가볍게 던져지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 오래 남는다.

마치 ‘너는 아직 그만큼 오지 못했어’라고

조용히 속삭이는 것 같다.

나는 늘 조금 늦는 편이었다.

새로운 기술이 나와도,

유행이 바뀌어도,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다가야 움직였다.

남들은 이미 다음 장을 넘기고 있을 때,

나는 아직 이전 페이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뒤처진다’는 말에는 묘한 온도가 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지만

서서히 마음을 눌러버리는 은근한 압박감.

아무도 다그치지 않는데,

내 안의 나만이 나를 조용히 다그치는 느낌.

하지만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뒤처졌다는 말은

누군가의 속도에 맞추지 못했을 뿐,

내가 멈춘 건 아니라는 걸.

나는 여전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다만 내 걸음은 세상의 리듬보다 조금 더 느렸을 뿐이다.

뒤처졌다는 건 어쩌면

세상을 한 번 더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릴 때,

나는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옆을, 뒤를, 위를 본다.

거기엔 서둘러가는 사람들이 놓치고 간 작은 빛들이 있다.

저녁 공기 속의 바람 냄새,

낡은 벤치에 앉은 노부부의 손,

천천히 지는 노을의 색.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뒤처짐의 증거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세상은 언제나 ‘빠름’을 칭찬한다.

빨리 배우고, 빨리 적응하고, 빨리 잊는 사람들.

하지만 마음의 일들은 언제나 느림의 언어로 쓰인다.

사랑도, 위로도, 이해도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그러니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뒤처졌다는 말에 너무 쉽게 상처받지 말자고.

그건 실패의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표를 지키고 있다는 증거니까.

누구나 제각기 다른 속도로 자란다.

누군가는 봄에 피고,

누군가는 늦여름에야 꽃을 연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의 계절은 아직 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계절이 도착했을 때,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뒤처진다’는 말이 얼마나 가벼운지,

그리고 ‘나답다’는 말이 얼마나 단단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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