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린 사람의 시간표
부제- 남보다 늦더라도 자신만의 리듬으로 사는 법.
나는 늘 조금 느린 사람이다.
눈치가 느리고, 결정이 느리고, 감정의 파도도 늦게 밀려온다.
남들이 벌써 다음 장을 읽을 때,
나는 여전히 한 문장에 머물러 의미를 되뇌곤 한다.
세상은 나에게 늘 말했다.
“조금만 더 빨리 해봐.”
“지금 아니면 늦어.”
그 말들은 겉으로는 친절했지만,
언제나 내 속도를 다그치는 재촉의 언어였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서둘렀다.
말을 빨리하고, 생각을 미루고,
감정을 대충 접어둔 채 다음 일을 했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날의 저녁에 깨달았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나의 시간표’를 잃어버리고 있었을까.
세상의 시계는 정확하지만,
마음의 시계는 언제나 불규칙하다.
어떤 감정은 하루 만에 지나가지만,
어떤 상처는 몇 해가 지나도 천천히 남아 있다.
그 느림이 불편해도,
그건 어쩌면 마음이 정직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계절이 다르다.
누군가는 봄이 빨리 오고,
누군가는 겨울이 길게 머문다.
중요한 건 계절의 순서가 아니라,
그 계절을 온전히 살아내는 시간이다.
조금 느린 사람의 시간표는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늘 ‘뒤처져’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시간 안에는 다른 결이 있다.
한 번의 웃음에 오래 머물고,
짧은 인연을 오래 기억하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곱씹으며 그 의미를 새기는 사람.
그 느린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건,
서둘러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진심, 깊이, 그리고 사람의 온도 같은 것.
나는 이제 더 이상 내 느림을 숨기지 않으려 한다.
조금 늦게 이해하고,
조금 천천히 사랑하고,
조금 오래 머무르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흘러가겠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내 속도로 살아갈 것이다.
오늘의 일정을 모두 끝내지 못해도 괜찮고,
사람들보다 조금 늦게 웃어도 괜찮다.
왜냐하면 나는
내 마음의 시간표에 따라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자라고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