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도 육지사람도 싫어!
제주 시골에 살면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제주 텃세가 그렇게 심하다면서요? 키라는 괜찮아요?" 남들이 매번 말하는 그 텃세를 사실 난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늘 텃세 때문에 제주 사람들을 싫어하는 육지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마다 경험치가 다르겠지만 난 텃세 때문에 제주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고 육지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사람복이 많아서 좋은 제주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육지에 사는 엄마가 갑자기 수술을 하게 되면서 엄마가 데리고 키우던 강아지는 제주 우리 집에 맡겨지게 되었다. 육지 가서 강아지의 짐들을 챙겨 비행기에 태워 강아지를 데리고 제주에 왔다. 그렇게 갑자기 육지 강아지의 제주살이가 시작되었다. 하루 2번 아침 저녁으로 산책을 하는 강아지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무조건 강아지와 산책을 해야 했다. 목줄을 챙기고, 간식을 주머니에 담고, 똥봉투를 챙겨 집을 나선다.
다행히 집 근처에 체육 공원이 있어서 그곳은 필수 산책 코스가 되었다. 하루에 두 번씩 빠지지 않고 매일매일 산책을 오갔다. 한동안 아무 문제없이 강아지와 산책을 잘 다녔다. 그러다 그 체육공원 바로 옆에 있는 노인회관 존재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강아지와 산책하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체육공원에 강아지 데리고 오지 말라고 하는 거다. 길가에 개똥을 우리 강아지가 죄다 싸는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그날 밤 모임에서 우연히 동네 이장님을 만났다. 체육공원에 강아지 데리고 산책하면 안 되는 거냐고? 내가 물었더니 이장님은 괜찮다고 하시면서 이제 다른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면 이장님 허락 받았다고 이야기하라는 거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동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강아지 데리고 산책할 때 뭐라고 하면 이장님이 산책해도 된다고 했다고 했다. 그리고 웃긴 게 그 체육공원 입구 안내판에는 강아지 산책 에티켓인 '펫티켓'이라는 안내문도 붙어있었다.
그런데 이 일로 이장님과 노인회관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에 이견이 생겼나보다. 그걸 아는 동네 이웃이 내게 와서 "키라, 강아지 산책 때문에 이장님 입장이 난처해졌어. 가능하면 체육공원 쪽으로 산책 다니지 않는 게 좋겠어."라고 하는 거다. 정말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나때문에 이장님께 피해를 줄수 없어 알겠다고 했다.
한동안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눈에 띄지 않을 시간을 골라 강아지 산책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강아지와 체육공원 산책을 하고 돌아나오는데 갑자기 노인회관 안에 있는 할머니가 손가락질을 하며 나가라고 소리를 치는 것이다. 나는 알겠다고 지금 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계속 소리를 지르고 강아지 데리고 나가라는 거다. 제주 사람들이 강아지를 싫어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게 저 정도로 소리 지르며 손가락질할 일인가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체육공원 잔디밭으로 강아지가 들어가길래 다시 끌고 나오다 저 건너편 노인회관 현관 앞에서 할머니가 나와서 또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거다. 강아지 데리고 나가라고. 이번에는 나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강아지를 싫어한다고 저렇게 소리 지를 일인가? 그리고 이 동네에 강아지 산책하는 사람이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닌데. 게다가 자신들이 키우는 강아지는 목줄도 안 하고 돌아다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왜 대체 육지 사람들이 강아지 산책 시키는 꼴은 보지 못하는 거냐고. 그리고 동네 길가에 개똥은 전부 육지 사람들 강아지똥인 거 마냥 뭐라고 하는지. 강아지를 키우는 육지 사람은 알 거다. 강아지 산책의 필수품은 똥봉투라는 사실을.
난 노인회관에 가서 방금 소리치신 분 누구냐고? 저한테 직접 말씀하시라고 했더니, 아무도 안 나오신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러더니 어떤 분이 왜 그러는 거냐 한다. 그러다 결국 싸움이 났다. 난 안 되겠다 싶어서 112에 신고했다. 경찰이 도착한 후에야 싸움은 진정이 되었다. 가까이 지내는 동네 이웃분이 키라가 이해하라면서 옛날 사람들이라 그렇다며 그냥 넘어가라고 한다. 이 동네에 함께 사는 이웃들인데 서로 이해해주자며.
제주살면서 처음 겪는 텃세였다. 강아지 때문에 내가 제주에서 텃세를 겪을 줄이야. 그동안 내가 텃세를 겪지 않았던 이유는 늘 고마운 제주사람1, 고마운 제주사람2와 함께 다녔기 때문이었다. 읍내에 가도, 귤밭에 가도, 그들과 함께였다. 돌이켜보니 그들과 함께 있으면 제주 사람들은 나에게 늘 친절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는 동네사람들과 깊은 교류를 하며 지낼만한 관계의 제주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저 '강아지 데리고 다니는 육지것'일 뿐이었다.
그동안 내가 알았던 제주에 대한 모든 기억과 추억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왜 그리 육지 사람들이 제주 사람을 싫어했는지 이제 나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 노인회관에 있었던 목소리 큰 할머니와 아는 사이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는 것도.
더 웃긴 건 시간이 흘러 동네 아는 할머니네 귤을 따러 갔는데 그때 내게 고래고래 소리를 쳤던 그 할머니가 계시는 거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날 알아보는지 못 알아보는지 내게 너무나 친절하고 상냥하게 하나씩 챙겨주시고 예뻐해주시는 거다. 나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할머니와 웃으며 귤을 따고 밥을 먹었다.
그때 알았다. 제주 텃세는 '모르는 사람'에게만 작동하는 거일수도 있다는 것. 얼굴을 마주하고, 이름을 알고, 함께 밥을 먹으면 텃세는 조금씩 사라진다. 아는 사람이 되면, 우리는 못되더라도 일부는 된다는 사실.
누가 그러더라. 제주에 30년을 살아도 육지사람은 육지사람이라고. 내가 그동안 제주사람들로부터 따뜻함을 너무 많이 받아서 8년만에 처음 겪는 텃세는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려려니 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