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 괸당

by 하우스노마드 키라

괸당이라는 단어를 제주에 와서 처음 알았다. 사전적 의미로는 혈연과 친인척을 뜻하지만, 제주에서 느끼는 괸당의 무게는 그보다 훨씬 끈적하고 단단했다.


제주는 한 다리 건너면 죄다 아는 사람이다. 사돈의 팔촌. 한 동네 안에서도 옆집이 큰집, 뒷집이 고모집, 이런 식으로 다 연결되어 있었다. 서울에 살 때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집-회사만 오가며 살았다. 그러니 제주의 괸당 문화가 신기할 수밖에. 육지 것인 나에게 괸당은 넘기 힘든 거대한 성벽이자, 때로는 배타적인 텃세의 다른 이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제주 사람들끼리 하는 농담이 있다. "국회의원 출마하려면 괸당이어야 한다."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니라 괸당이어야 당선될 수 있다는 말이다. 정말 선거철에 한마음으로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고 응원하기 위해 마을 포구에 모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괸당의 힘이랄까.


제주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정말 따사롭던 초여름이었다. 차를 타고 카페에 출근하는 데 라디오에서 유피의 '바다'라는 노래가 나왔다. "나의 바다야, 나의 하늘아~" 그날 하늘과 너무 잘 어울리는 노래라 라디오 볼륨을 높여서 신나게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출근하고 있었다.


카페에 도착해 주차를 하는데 큰 음악 소리 때문에 후방 센서 소리를 못 들었다. 그렇게 후진하다 돌담을 들이받고야 말았다. 그런데 하필 그 돌담 너머에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돌담의 돌은 그 트럭으로 날아가 차에 흠집을 내버렸다. 아이쿠. 큰일 났다. 아, 머리를 정말 쥐어뜯고 싶었다.


카페에 출근했더니 고마운 제주사람1과 그의 친구들이 있었다. "아, 이걸 어째요?!!!" 일단 트럭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할머니가 받으셨다. 차가 긁혔다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는 다짜고짜 어디 사냐고 물으시면서 여기 사람 아닌 것 같다고 한다. 나는 여기 사람 맞다고, OO리에 산다고 했다. 옆에서 고마운 제주사람1에게 코치를 받으며 대답했다.


할머니는 그 동네 누구 집 딸일까 하시더니 아버지 이름을 물으신다. 난 고마운 제주사람1을 쳐다보며 "아버지 이름요?" 했더니, 고마운 제주사람1이 "김성원"이라고 알려준다. 난 곧바로 고마운 제주사람1의 친구 이름을 둘러댔다. 할머니는 "그래? 잘 모르겠는데." 하시더니 "아이고, 살다 보면 차가 긁힐 수도 있지" 하시면서 괜찮다고 전화를 끊으셨다. 휴우.... 이건 괸당이 아니면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고마운 제주사람1의 친구를 괸당으로 팔아서(?) 위기를 넘긴 것이다.


이렇게 괸당 문화가 나를 구해준 날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강한 나에게 괸당 문화는 상당히 어색했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따뜻함이기도 하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때론 부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문화이자, 척박한 땅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온 그들의 삶 그 자체다.


처음엔 신기하고 어색했던 제주의 괸당 문화를 지금은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그들의 촘촘한 거미줄같은 연결을 존중하고, 이방인으로서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워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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